[진료실 풍경] 산부인과에서는 ‘별난 보호자’

입력 2021-08-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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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

의사에게 환자의 보호자는 꼭 필요한 사람이다. 환자의 병력, 가족력 등 정보를 수집하고 치료계획을 상의하는 동업(同業)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의식불명이거나 의사결정권이 없는 소아일 때에는 보호자의 역할, 파워가 더 막중하다. 이런 보호자가 산부인과에서는 희한하게 없느니만 못할 때가 있다.

이틀 전 70대 할머니가 아들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말이 할머니이지 차림새나 외모로 보면 50대라 해도 믿을 정도로 멋쟁이 중년여성이었다. 흔히 밑이 빠졌다고 표현하는 자궁질탈출증이 주소(主訴)였는데, 부부관계 하시냐는 나의 질문에 “바깥양반 죽은 지 오래여. 다 늙어서 무슨”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셔서, 자궁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도와주는 ‘페서리’라는 고무 링을 질 내에 삽입해 드렸다. 그런데 다음날 할머니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의사 선생님, 여선생님이라 말하는데, 사실 나 남자친구가 있어요. 이거 있어도 아저씨랑 밤에 괜찮아요?” 어제는 진찰대 커튼 뒤에 있는 아들이 들을까 봐 부끄러워 거짓말을 하였고, 그게 밤새 마음에 걸려 다시 왔다는 것이다.

같은 날 17세 고등학생이 엄마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무월경을 주소로 한 학생이었는데, 성경험이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네? 저 남자친구 한 번도 없었는데요.”라고 수줍게 대답하여 질초음파 대신 복부, 항문 초음파로 진료를 대신하였다. 자궁 내에 혈종이 가득하였고 제거 및 확인이 필요해 보였으나 성경험이 없어 질경 삽입 등 산부인과 기본검사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의사 선생님,우리 딸 아직 애기라, 일부러 여선생님 찾아왔어요. 산부인과 오자고 하니 겁부터 먹길래. 괜찮은가요?” 나는 진료로 처녀막을 파열시킬 수는 없으니 일단 약물로 조절해 보자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학생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의사 선생님, 사실 저 남자친구가 있어요. 진료 전날 밤에 관계가 있었는데, 그것 때문은 아니지요?” 어제는 진찰대 커튼 뒤에 있는 엄마가 들을까 봐 무서워 거짓말을 하였고, 그게 밤새 마음에 걸려 다시 왔다는 것이다.

산부인과에서 ‘성경험 유무’는 병의 원인을 찾거나 진료방법, 치료계획 등을 정할 때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따라서 솔직하고 사실적인 정보가 필요한데, 어제 오늘 만난 두 환자처럼 보호자와 함께 내원하였을 때에는 진료 방향이 전혀 다른 쪽으로 흐를 때가 있다. 그래서 대부분 보호자를 진료실 밖으로 내보내고 문진을 하는데, 환자가 거부하거나 함께 있기를 원한다면 무리하게 쫓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출산 경험이 없어서, 멀리 사는 아들만 셋이라, 다양한 이유로 같이 갈 여자 보호자가 없어 산부인과 진료를 보고 싶어도 못 보는 환자들도 있는데, 이처럼 보호자가 오히려 훼방꾼이 되는 때도 있으니, 산부인과에서 보호자라는 존재는 참 별나다.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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