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섭의 중국 경제인 열전] 수(隋)나라 건국한 문제(文帝)

입력 2021-08-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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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사랑하지 않고 창고를 사랑하다

수(隋)나라를 건국한 수 문제(文帝) 양견(楊堅)은 588년 대군을 몰아 불과 석 달 만에 남조(南朝)의 진(晋)나라를 멸망시켰다. 이로써 장장 300여 년에 걸쳐 지속되었던 남북조(南北朝) 분열시대가 마침내 종언을 고했다. 남북조 시대는 130여 년에 불과하지만, 220년 한나라가 위·오·촉 3국으로 나뉘면서 분열한 이래 동진이 잠시 통일한 뒤 곧바로 분열되어 전란에 빠졌기 때문에 실제로 분열된 기간은 300여 년에 이른다.

부국 수나라가 29년 만에 붕괴한 까닭

수나라가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남쪽의 진나라가 약했다기보다 수나라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수나라는 이어 서역의 토욕혼도 격파하였고, 북방의 강적 돌궐도 수나라에 스스로 몸을 굽혀 칭신(稱臣)하였다. 실로 수나라의 강대함은 특별하게 두드러졌다. 그러나 이렇게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던 수나라도 통일을 이룬 뒤 불과 29년 만에 순식간에 붕괴되고 말았다.

수나라의 강성함은 인구의 측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남북조 당시 진나라는 50만 호에 인구 200만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수나라는 890만 호에 4600만 명의 인구를 거느렸다. 실로 수나라는 부유한 국가였다. 뒷날 당 태종은 수나라 양견 말년에 식량이 50년 동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다고 말한 바 있었다.

도광양회, 자신의 재능을 깊이 숨기다

수나라 문제의 성은 양, 이름은 견이며 북조(北朝) 주(周)나라 섬서성(陝西省) 홍농 사람이었다. 양견이 태어날 때 이상한 일이 있었다. 집 옆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양견이 태어나자마자 그 절의 여승은 아이를 안고 절에 들어가 길렀다.

어느 날 여승이 외출할 일이 있어 양견을 친어머니에게 맡겼다. 그런데 친어머니가 아들을 안자마자 아들의 머리에는 뿔이 돋고 피부에는 비늘이 생겨서 용과 같이 되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어머니는 그만 아이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때 외출했던 여승이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급히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아이가 땅에 떨어져 울고 있었다. 이에 여승은 “우리 아이가 놀라서 천하를 손에 넣는 시기가 늦어졌구나”라며 안타까워했다.

양견은 점점 성장하면서 보통 사람과 다른 인상을 지니게 되었다. 주나라 사람이 어느 날 무제에게 말했다. “저 양 씨는 모반할 관상입니다.” 양견은 이 말을 전해 듣고 스스로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숨기고 새벽을 기다리며 자기의 재능을 깊이 숨기며 은인자중 지냈다.

세월이 흘러 이윽고 양견의 딸이 주나라 선제의 황후가 되었다.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새벽이 찾아오자, 양견은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의 전면에 나서 태후의 아버지로서 섭정하였다. 그리고 주나라 제위를 손에 넣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수나라를 건국하였다. 그는 즉위한 지 불과 9년 만에 압도적인 군사력을 동원하여 진나라를 평정하고, 천하통일의 역사적 대업을 이루었다.

▲수 문제는 남북조 시대의 분열을 끝내고 대륙의 재통일을 이루어 부유한 대국을 건설하였지만, 말년의 실정과 권좌를 이은 아들 양제의 폭정으로 그의 제국은 29년 만에 문을 닫았다.
▲수 문제는 남북조 시대의 분열을 끝내고 대륙의 재통일을 이루어 부유한 대국을 건설하였지만, 말년의 실정과 권좌를 이은 아들 양제의 폭정으로 그의 제국은 29년 만에 문을 닫았다.

모든 창고가 넘쳐 쌓을 곳이 없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뒤 문제는 남북조시대의 모든 혼란과 악폐를 과감히 개혁하였다. 과거제를 실시하여 중앙집권제를 강화하고 귀족세력을 억제했으며, 모든 백성에게 균등하게 토지를 지급하는 균전제(均田制)를 실시하였다. 균전제란 모든 토지를 황제의 소유로 규정하고 개인 경작자는 사용권을 갖는 것으로서, 15세 이상의 남성은 전답 40무(畝, 약 0.06㎢)를 받았고 여성은 그 반을 받았는데 만 70세가 되면 국가에 반납하도록 하였다. 수 문제는 스스로 매우 근검한 생활을 하면서 백성들의 세금을 감면하고 부역을 경감시키는 등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을 펴주려고 노력하였다.

수 문제가 수나라를 건국한 지 20여 년 동안 국가는 안정되고 경제는 번영하여 이른바 ‘개황(開皇, 수 문제 때의 연호)의 치(治)’로 불리는 선정을 펼쳤다.

어느 날 재정을 담당하는 관리의 보고서가 올라왔다. ‘창고라는 창고는 모조리 꽉 들어차 더이상 곡식과 가죽을 쌓아 놓을 곳이 없어 복도와 처마 밑에 쌓아 놓을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조서를 내려 창고를 짓도록 하였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보고가 올라왔다. ‘새로 창고를 지었는데도 곡식과 가죽을 쌓을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문제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그러면 이제 부를 백성들에게 돌리겠노라. 금년의 조세는 면제하여 백성들의 생활에 보탬을 주도록 하라.” 이 당시 물자가 얼마나 풍부했던지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선 20년 동안에도 이때 쌓아 놓았던 피륙을 계속 사용했을 정도였다.

말년에 이르러 사회 모순도 함께 축적

수 문제는 성격이 엄격하고 치국에 힘썼으므로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그대로 시행되었고, 금지하면 어기는 자가 없었다. 돈에는 인색했지만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상 주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백성들의 노고를 곧잘 어루만져 농업과 양잠을 장려했으며, 부역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적게 거두었다. 그리고 항상 낡은 옷을 입고 반찬이 하나뿐인 식사를 할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궁녀들이 화장을 하거나 비단옷을 입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러므로 천하는 그를 본받아서 모두 검소한 생활을 했다. 문제가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았을 때 전국의 호수(戶數)가 400만 호가 채 안 되었는데, 만년에는 800만 호를 넘었다.

그러나 문제는 말년에 이르러 모든 일에 의심이 많고 참소(讒訴)하는 말을 쉽게 믿는 바람에 공신들의 생명이 온전하지 못했다. 특히 식량 비축은 수 문제 때부터의 전통이었다. 수 문제 14년에는 큰 가뭄이 들어 수많은 백성들이 굶어죽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당시 나라의 창고는 넘치도록 비축되어 있었지만, 수 문제는 그것을 백성들에게 내주지 않았다.

훗날 당 태종은 “수 문제는 백성을 사랑하지 않고 창고를 사랑했으며, 수 양제(煬帝)는 이러한 엄청난 재부를 믿고 사치하면서 방탕하여 끝내 멸망하였다”고 평하였다.

결국 수 문제는 국가의 재부를 축적하는 측면에서 탁월한 성공을 거뒀지만, 그와 함께 사회 모순도 동시에 축적시켜 나갔다. 그리고 그의 아들 수 양제는 아버지 수 문제가 남긴 국가 재부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사회 모순도 계승하였다. 여기에 그의 유난했던 사치와 방탕은 모순을 더욱 악화시키면서 마침내 수나라는 신속한 멸망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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