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대 얻으려면 정부의 의견 수렴 과정 중요”
이에 국제사회는 2015년 12월 파리기후협정을 시작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본격화했고, 주요 선진국들은 앞다퉈 2050 탄소제로 목표를 설정했다. 우리나라 정부도 지난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한 이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부문별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달 5일에는 탄소중립을 위한 3가지 시나리오도 공개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해답을 얻기 위해 이투데이는 좌담회를 통해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전문가 4인은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과 교수, 박용성 한국교통안전공단 상임이사, 임소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정상훈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다.
-기후위기에 직면하면서 탄소중립이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고, ‘가야 할 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탄소중립을 이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유 교수= 탄소중립은 우리의 생존에 위협을 주는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다. 또한, 기후변화 완화 노력에 대한 전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면 우리나라 경제의 장래가 밝지 않을 수 있다.
△정 캠페이너= 기후위기가 극단의 상황으로 전개되면서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IPCC가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화 이후 기온이 1.5℃ 상승할 때 전례 없는 극한의 기후현상들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구 온도가 1.5℃ 이상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2030년에는 2010년 대비 45%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그리고 2050년 이전에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
△임 연구위원= IPCC가 권고한 대로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유지하기 위해 탄소중립이 시급히 필요하다. 현재까지 각국이 국제연합(UN)에 제출한 감축목표(NDC)로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우므로, 야심찬 탄소중립 목표가 요구된다는 점은 이미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됐다. 특히, 경제활동 전반에 걸친 탄소중립이 중요하다. 이미 배출된 탄소를 상쇄할 탄소 흡수 또는 제거 활동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현재 탄소중립을 잘하는 국가는 어디이고, 배울 점은 무엇인가.
△박 상임이사=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4개국의 경우 2017년부터 세계 최초로 탄소 중립 선언을 하며 정책적·기술적으로 앞서가고 있다. 특히, 스웨덴은 전체 전력의 44.5%를 산간 지형을 활용한 수력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원자력이 30.2%로 뒤를 잇고 있다. 공해가 없는 ‘수력+원전’이라는 에너지 믹스 덕분에 스웨덴의 화석연료 비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2.2%다.
△임 연구위원= 유럽연합(EU)과 유럽 국가들이 탄소중립 선언에 가장 적극적이다. 특히, 탄소중립을 2045년까지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법제화한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제조업 비중이 높음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은 2020년 감축 목표를 초과 달성했고, 재생에너지 발전량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한, 정부는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독일 산업의 경쟁력 약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산업전환 지원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의 ‘탄소발자국 지우기’ 정책이 공감대를 얻으려면 어떤 방안이 필요한가.
△유 교수= 정책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산업 혹은 집단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대응책이 같이 제시돼야 한다. 또 기후변화의 심각성으로 더는 대책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체감형으로 전달해야 한다.
△임 연구위원= 이해관계에 따라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과 전망이 급진적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라고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이해관계자와 일반 국민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정부는 탄소중립시민회의 등을 통해 국내 산업계와 시민의 의견이 형식적으로 반영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의견 수렴 과정의 섬세한 기획과 운영에 힘써야 한다.
△정 캠페이너= 국민은 점점 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정치권이 시장에 올바르고 분명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 탄소중립에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산업경쟁력 핑계를 대는 일부 기업집단에 있다. 탄소중립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들에는 인센티브를, 그렇지 않은 기업들에는 비용이 증가하는 시장질서를 형성해 주고 국가를 이끌어나가야 한다.
-탄소중립 실현 과정에서 노동 집약형 제조업 기반의 우리나라 기업들은 부담이 커져 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탄소중립 시대 우리 기업들이 나가야 할 방향은.
△박 상임이사= 현재의 변화는 우리 기업들에 유리한 부분도, 불리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미 기술 수준이 높고 사회적 준비가 돼 있는 유럽·북미 국가는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앞으로 많은 경제발전이 필요한 개발도상국들은 매우 불리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경쟁력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더욱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임 연구위원= 최근 글로벌 기관투자자 사이에선 투자 기준으로서 기업의 재무적 수익·비용 이외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중요하게 고려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금융계로부터의 자금 조달이 중요한 기업들은 환경문제와 기후변화 위험을 기업의 평판 위험에서 더 나아가 금융 위험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ESG 강화를 기업의 장기적 가치 증진을 위한 전략으로 이해하고, 기업의 경영전략과 비즈니스 모델을 진화해 나가야 한다.
△임 연구위원= EU와 미국을 중심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시행이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이들 국가의 배출권 거래제를 포함하는 감축 노력 수준의 차이를 각국의 여건을 고려해 유연하게 비교·분석함으로써 탄소국경세 도입에 관한 국제적 협의 과정에 대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탄소국경세의 확장과 진화에 대비해 글로벌 공급망 전 과정에서의 탄소배출 관리가 필요하다.
△박 상임이사= 우리나라는 수출경제, 그것도 철강·자동차·반도체·중화학 제품의 수출 비중이 높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의 관세라도 위협이 된다. 다만, 탄소국경세가 모든 국가에 공정하게 적용이 된다면 에너지 효율화가 더 잘 돼 있는 기업은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고, 중국, 인도 등 경제 발전이 더 필요한 국가의 생산품 대비 경쟁력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탄소중립에서 탈석탄을 빼놓을 수 없다. 다만 탈원전까지 선언한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원전에 대한 방향성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유 교수=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원자력의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기본적인 전제는 전력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며, 동시에 재생에너지에 의한 전력 생산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충실히 이행한 이후에도 원자력이 필요하면 원전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
△정 캠페이너= 현재 우리나라의 탈원전 정책은 40년간 운영해 온 원전을 향후 60년간 더 운영하겠다는 사실상 ‘원전 병행’ 정책이다.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력생산의 62%를 차지하고 있는 화석연료인 석탄과 천연가스 발전을 줄여 나가야 한다. 결국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과 풍력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효과적인 대안이다. 원전은 건설에 너무 오랜 기간이 걸리고, 위험하고, 비싸지고, 수용성이 낮아서 시급한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환경적인 제약이 많은 우리나라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활성화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이에 대한 해법이 있다면.
△박 상임이사= 재생에너지가 우리나라에서 필연적으로 시행할 에너지 전환 수단이라면, 이러한 수단을 결정하는 데에는 과학적인 분석에 의한 적합한 결정을 해야 한다. 결정된 이후에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필요한 단 한 가지는 ‘의지’다. 기술이 발전해 매우 값싼 태양광이 나온다고 가정하면, 태양광 발전을 하지 말라고 해도 자동으로 확산한다. 이 문제를 계속 경제적 문제로 본다면, 매우 값싼 태양광이 나오기 전까지는 정말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정 캠페이너= 환경적인 제약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국가에나 존재하는 문제다. 일조 조건이 한국 대비 20~30% 불리한 독일도 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신속하게 늘리고 있다. 문제는 잘못된 정보로 인한 주민 수용성 부족과 이격거리 규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업 과정에 주민 참여를 확대하고, 이익을 공유하면서 주민 수용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지능형 그리드망 구축과 ESS 보급 및 기술 개선을 통해 재생에너지 보급에 따른 전력망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탄소중립을 위해선 재활용이나 일회용품 줄이기 등 실생활에서 실천도 중요하다.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생활양식은 어떻게 변화돼야 하나.
△유 교수= 무엇보다도 전기, 화석연료 사용 등 에너지 절약에 대한 노력, 그리고 고효율 기기의 적극적인 구매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후변화를 위한 나의 노력이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임 연구위원=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에 있어서 전체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 중 20% 이상이 일상생활 양식의 변화로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전기·물 절약, 육식 소비와 푸드마일리지 줄이기, 대중교통 이용 등 현대인의 편리한 생활양식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불편함이 따르지만, 이러한 변화는 탄소중립을 향한 여정에서 기술개발과 산업구조 변화에 관한 부담과 압력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할 것이다.
△정 캠페이너= 일상생활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육식보다는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변화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 축산업에서 배출하는 탄소의 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은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을 벗어나 우리 생존의 문제이다. 내년 대선에서 더욱더 과감하고 야심찬 탄소중립 정책을 제안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세종=서병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