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달 20일 발주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모의실험에 카카오의 자회사 '그라운드X'가 선정됐다. 각축전을 벌였던 네이버 라인플러스와 SK C&C 등 3개사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관련해 업계 전문가들은 그라운드X의 선정 이유로 △클레이 출시부터 쌓아온 친근감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발행에 보다 적극적 △가격 경쟁력을 꼽았다.
한국은행은 용역 개찰결과를 통해 그라운드X가 종합 95.3754점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라인플러스 92.7182점, SK 89.8163점이었다. 전체 점수의 9할을 차지했던 기술점수에서 그라운드X는 85.4004점을 받아 84.6223점을 받았던 라인플러스를 소폭 앞섰다.
CBDC 관련 자문을 맡았던 한 전문가는 “사실 기술적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라며 “클레이튼이 등장했던 2018년~2019년 경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에 프로모션 명목으로 (클레이튼의 기축통화인) 클레이를 뿌렸는데, 관련한 영향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상자산의 일종인 클레이를 직접 활용해보며 친밀감을 쌓았던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그라운드X 관계자는 “클레이 프로모션은 클립 신규 고객을 대상으로 제공한 것으로, 따로 제공한 물량은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업계 전문가들은 그라운드X의 영향을 받은 지점이 한국은행 CBDC 제안서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CBDC 사업은 10월 말까지 성과를 내야 하는 초단기 사업인데, 일반적인 서버 구축 외에도 NFT 등 관련 서비스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은행 CBDC 용역 제안서를 살펴보면 모의실험 2단계에서 이용자가 디지털예술품, 저작권 등을 CBDC로 구매하는 기능을 요구하고 있다.
관련해 전문가는 “현재 해당 사업은 거래소에서 새로운 코인을 론칭하는 것과 유사한 수준인데, NFT 기능까지 넣은 것은 사업 기간을 고려해도 과도하다”라며 “그라운드X 자체가 NFT 발행 등이 가능한 플랫폼이니 관련 영향이 있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 또한 “라인에서도 그라운드X와 유사하게 NFT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라인은 일본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보니 국내 기반인 그라운드X가 (상대적으로) 점수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낮은 입찰가 또한 영향을 미쳤다. 용역 개찰결과를 살펴보면 그라운드X는 가격 항목에서 9.975점을, 라인플러스는 8.0959점을 받았다. SK는 9.3496점이다. 각 업체가 부른 구체적인 입찰가는 전해지지 않았다.
CBDC 자문을 맡았던 다른 관계자는 “기술 점수에서 크게 갈릴 줄 알았는데, 실제 갈린 건 가격”이라며 “더불어 국내는 카카오페이‧카카오뱅크 등 카카오 생태계가 있는 만큼 대중성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그라운드X를 기준으로 가상자산 시장이 재편될지는 아직 미지수로 점쳐졌다. 한국은행에서 CBDC 사업에 나선 만큼, 해당 사업을 선점한 업체의 영향력이 공고해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다. 실제 용역 사업의 최대 예산은 49억6000만 원으로 큰 수익을 내지는 못하지만 미래 시장 발굴을 위해 네이버‧카카오 외에도 삼성SDS, LG CNS 등이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한 바 있다.
다만 한국은행이 CBDC 사업에 대해 모의실험이라는 입장을 고수 중이고, 카카오 밀어주기 논란을 의식하는 만큼 그라운드X의 영향력이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다.
업계 전문가는 “카카오 밀어주기에 대한 우려가 있어 (CBDC 모의실험) 이후에도 쭉 그라운드X의 메인넷을 이용하기엔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