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스트레스를 부르는 직장상사, 문재인 대통령

입력 2021-08-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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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환 정치경제부 부장

이름 석 자만으로도 부하직원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는 능력자인 직장상사. 그중에서도 최악으로 꼽히는 유형이 있다. 중요한 업무나 의사결정을 떠넘기는 것은 기본, 결과가 좋으면 공을 자신에게 돌리고 일이 잘못되면 책임은 부하직원들이 지는 경우다. 종종 이뤄지는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에서 최소 공동 1위를 내려놓지 않는 ‘책임 회피형’이다.

문득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직장상사로서의 문재인 대통령을 평가해 보라고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업무나 위치를 고려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앉아 있음에도 이를 회피해 버리는 바람에 아랫사람들이 대신 책임을 지는 불상사가 하루가 멀다고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2019년 10월 정부가 172억 원을 들여 문 대통령의 퇴임 시기인 2022년 5월에 맞춰 경남 양산 사저 인근에 대통령 기록관을 마련키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판이 일었다. 불과 몇 년 전 역대 모든 대통령의 기록을 통합해 보관하는 대통령 기록관이 세종시에 문을 열었는데 문 대통령만 거액을 들여 별도의 개인 기록관을 짓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이 주된 비판 이유였다.

문 대통령은 “내 뜻이 아니다”며 기록관을 백지화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불같이 화를 냈다”고 별도의 브리핑도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기록관을 지으라고 지시한 것은 문 대통령 자신이었다. 2019년 8월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열어 2020년 예산안을 심의하고 의결했다. 당시 예산안에는 문 대통령 기록관 건립 예산이 있었다.

문 대통령이 그 많은 예산안을 일일이 다 들여다보지 못했을 수 있고, 실제로 기록관 건립은 자신의 뜻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게 아랫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도 모자라 불같이 화냈다고 외부에 공표까지 할 일인지, 아니면 결재권자이자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고 의사봉부터 두드린 내 잘못이라고 사과할 일인지 판단은 각자 몫이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코로나 백신 확보가 늦어지면서 거센 비판이 일자 문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백신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또 불같이 화를 냈다. 청와대는 친절하게도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부터 13차례에 걸쳐 백신 관련 지시를 내렸다”며 대통령 어록을 날짜까지 붙여 상세히 공개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했다는 ‘백신 관련 지시’는 대부분 국산 백신 개발을 서두르라는 독려였고, 해외 백신 확보를 지시한 것은 9월 이후 두어 번이 전부였다. 문 대통령이 ‘국산 백신 개발’이라 말했어도 ‘해외 백신 확보’로 알아들었어야 할 공무원의 눈치 부족이 문제였다면 행정고시 공직적격성평가(PSAT)의 언어논리 영역이나 상황판단영역을 전면 개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그나마 권력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두고 엉뚱한 곳에 화를 내는 것으로 끝났지만, 임기 말이 가까워진 요즘에는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떠안기는 수준을 넘어 대신 공개사과에 나서도록 하는 안쓰러운 장면이 잦아졌다.

얼마 전 청해부대원들의 집단감염 사태에 대해 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서욱 국방부 장관은 서둘러 대국민 사과 성명을 내고 반복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입원해 있는 장병들에게 ‘고래밥’이 포함된 과자를 선물로 보내 빈축을 샀다.

며칠 뒤 문 대통령은 홍삼과 함께 쾌유를 빈다는 편지를 보내 화난 장병들을 달랬다. 다 큰 어른들에게 과자를, 그것도 그 많은 과자 중 하필 ‘고래밥’을 골라 보내고, 그사이 상관인 문 대통령은 슬쩍 홍삼을 선물해 비난의 화살이 한쪽에만 쏟아지도록 한 기만전술은 역시 분단국가의 4성 장군과 군 통수권자 자리에는 아무나 오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자신 있다던 부동산 안정화가 물 건너가자 7월 말 ‘대국민 담화’라는 황당한 이름으로 대책 아닌 대책을 발표하던 홍남기 부총리는 차라리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집값 때문에 송구하다”면서 “집 사면 후회할 거야”라는 으름장을 놓고, “공급은 부족하지 않지만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겠다”는 횡설수설을 늘어놓던 홍 부총리는 TV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그 역시 한 가족의 가장일 테니 이해는 가지만, 대신 나가서 사과도 하고 엄포도 놓으라고 등을 떠민 그의 직장상사는 조금 너무하지 않았나 싶다.

측은하기는 김부겸 총리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 글로벌백신허브화추진위원회 첫 회의는 위원장인 김 총리 대신 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고 백신 생산 5대 강국 도약, 2025년까지 2조2000억 원 투자 등 거창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백신개발에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말라”고 지시했다.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문 대통령의 업적’이 될 것이다. 반대로 실패한다면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으니 김 총리가 의문의 사과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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