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지난달 16일 임시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일영 기재위원의 “정부 입장은 그렇고, 국회에서 논의해서 결정하면 따르시겠지요”라는 질문에 그는 “아니, 뭐 그건 그럴 것 같지가 않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순간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라는 말이 떠올랐고,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후사정을 보면 정 위원과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100% 보편지원이냐 선별지원이냐를 두고 질의응답을 하던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앞서 홍 부총리는 “일단 정부는 80%로 국회에다 제출했고, 저는 그렇게 유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재난지원금을 두고 벌인 주장이야 각자 소신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옳고 그른 문제로 따지긴 어렵다.
반면, 여당과 홍 부총리 간 갈등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을 수도 있겠다 싶다. 실제, 이번 사안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는 부총리 해임 건의 카드까지 나왔었다. 앞서 지난해 11월 양도소득세 대주주 요건과 관련해 정부 여당 의견이 받아들여지자 홍 부총리는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홍 부총리가 민주주의마저 부정하며 선을 넘어서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다수결로 결정한다. 국회의 결정은 곧 국민의 결정이기도 하다. 설령 불만이 있다손 치더라도 더군다나 국민의 공복인 공직자라면 따라야 하는 것이 맞다.
다음은 이주열 한은 총재. 지난달 27일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총재와 만나 환하게 웃는 사진을 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어제 모처럼 만나 점심을 하며 경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며 “최근의 거시경제상황, 코로나 진행에 따른 시나리오들, 어려운 민생문제, 통화정책 등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고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은 관계자는 “두 분이 워낙 친하고 예전에 잡아 놓은 약속”이라며 “사적으로 개인적으로 만난 것이다. 별게 없으니 확대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실제 개인적 만남일 수 있다. 김 전 부총리가 밝혔듯 2008년 경제금융비서관과 부총재보로 만나 손발을 맞추기 시작했었고, 부총리와 총재가 돼서도 손발을 맞췄으니 친해질 수밖에 없는 사이다. 이 총재 입장에서는 김 전 부총리가 은인이기도 하다. 부총재가 되는데, 총재를 연임하는데 김 전 부총리가 사실상 큰 힘이 돼 줬다는 것은 한은 안팎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만남의 시점과 상황, 그리고 그 만남을 공개했다는 데 있다. 김 전 부총리는 이미 정치인이다. 이번 대통령선거 정국에서 잠재적 대권 주자인 소위 잠룡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실제, 그는 최근 정치적 행보를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3일 충남 논산 돈암서원을 찾은 자리에선 국민의힘 대선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연달아 비판한 데 이어 “조만간 구체적인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또, 김 전 부총리라 하더라도 이 총재가 암묵적으로라도 동의하지 않고서는 만남을 공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거판에 휩쓸릴 수 있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했다고밖에 해석되지 않는 대목이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내년 3월 대선이 코앞이고, 6월엔 지방선거도 있다. 홍 부총리는 벌써부터 이달 말 사퇴한 후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도지사로 출마할 것이라는 설이 나돌고 있다. 이 총재도 내년 3월 말 임기가 끝난다.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집, 학교 아니면 정치권밖에 없다.
여전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에 경제상황이 위태롭다. 재정과 통화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양 수장의 마음에 정치바람이 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kimnh21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