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오금동에서 혼자 살고 계셨던 할머니는 오래전에 만났던 클라이언트이다. 할머니는 내가 아파트 현관문을 열 때면 며칠 만에 사람을 본다며 반가워하셨다. 그는 일주일에 겨우 한 번 외출을 하셨다. 무릎관절염이 심해 유모차를 밀면서 간 교회에서, 애증의 과거와 고난의 현재를 버겁게 딛고 성심을 다해 기도하셨다. 그리고 어쩌다 찾아오는 사회복지사를 위한 기도도 잊지 않으셨다. 나의 어머니 외에 날 위해 기도해 주는 유일한 분이셨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고마워하셨다. 할머니는 힘든 삶 속에서도 타인을 위한 배려와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일까. 청년 시절의 사회복지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코로나의 파도에 우리는 많이 지쳐 있다. 우리는 숱한 불편함과 혼란 그리고 두려움의 고비를 넘어왔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 이전의 자유롭던 이동과 만남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느낀다. 고난의 여정 속에서 잠시나마 좋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은, 희망의 싹을 틔우는 것과 같다.
고난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비책은 극복을 위한 활동이다. 시험 불안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비책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한편, 고난에 따른 무기력과 상처의 가장 실질적인 치유법은 무엇일까? 지나온 애틋한 그리움, 그리고 소박한 동경을 품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고난의 파도와 파도 사이에 나눌 수 있었던 애틋한 정과 소박한 위안의 조각들을 무심히 흘려 버리지 말자. 코로나의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건강과 자유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나마 지금의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이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하여 안도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치유는 이미 진행 중인 것이다.
더 큰 고난이 아직 다행히도 오지 않았음에 대한 자각, 그리고 지금 여기서 함께 나누고 있는 소중한 것들, 이것을 깨닫게 된다면 파도가 아닌 감사함이 밀려온다. 감사는 남겨진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낼 힘을 줄 것이다.
황정우 지역사회전환시설 우리마을 시설장·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