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기업의 성공으로 우리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뤄내서 국민 대다수가 혜택을 받았지만 그 혜택이 고르지는 않았다. 특히 기술 발전은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까닭에 혜택이 점점 성공한 일부에 집중되고, 이른바 낙수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이 경향은 경제성장과 함께 소득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산업정책은 국가경쟁력 제고의 긴요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소득분배 측면에서는 역진적 경향을 띠어가고 있다. 따라서 산업정책의 긍정적 측면을 살리면서도 소득 역진적 효과를 상쇄할 수 있는 정책의 개발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사회적부기금(social wealth funds)’의 원리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사회적부기금의 원리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성된 기금을 금융시장에 투자하여 그 수익금을 전 국민에게 배당하자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알래스카주의 영구기금이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석유자원 판매금으로 조성한 기금을 금융시장에 투자하고 그 수익금을 매년 전 주민에게 배당하고 있다. 알래스카영구기금은 2020년 전 주민에게 약 992달러(약 100만 원)를 배당했다.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는 알래스카영구기금을 모델로 삼아 석유자원이 아니더라도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통해 사회적부기금을 조성하여 모든 시민들에게 일정액을 배당하자는 방안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사회적부기금을 조성하는 한 방법은 기업에 산업정책의 일환으로 제공하는 보조금의 대가로 지원 대상 기업의 의결권 없는 우선주를 국가가 확보하는 것이다. 2020년 기준으로 우리 정부는 연간 R&D 분야에 약 24조 원, 중소기업 지원에 약 29조 원을 투입했다. 이 중에서 R&D 분야의 약 5.5조 원과 중소기업 지원 분야의 9조 원은 기업에 보조금으로 직접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일정 비율을 정부의 투자지분으로 삼을 수 있다. 투자지분 중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성공 시에는 많은 성과를 낼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상당히 안정적 수익을 보장할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중소기업청은 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 지원에 ‘성공불제’를 도입했다. 성공불제는 입주업체가 보육 지원 졸업 시점에 일정 부분의 주식을 국가에 기부하는 제도인데, 필자가 근무하는 기관의 창업보육센터도 이 제도에 근거하여 취득한 주식으로 매년 약 4%의 수익을 내고 있다. 이 수익은 추가적인 기업 지원에 활용할 수 있으며, 일정 규모에 이르면 국민에게 배당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 모델을 중앙 차원에 적용한다면 정부는 매년 R&D 지원을 비롯한 기업지원금을 국민배당을 위한 기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 정부가 기업지원금의 대가로 기업 지분을 받아 적립하면 그로부터 매년 일정한 수익금이 발생한다. 정부는 매년 기업 지원을 하기 때문에 이 기금은 누적적으로 증가하고 수익금도 늘어날 것이다. 만약 2021년부터 매년 현재 수준으로 R&D 및 중소기업 부문에 지원하고, 이를 전부 지분화한다면 2030년에는 기금이 21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금이 현재처럼 약 4%의 수익을 낸다면, 2030년 말에는 전 국민에게 연간 약 25만 원의 시민배당을 기본소득으로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액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 금액도 역시 전체 국민소득에 비교하면 그리 크지는 않다. 하지만 소득양극화 심화로 소득재분배를 위해 기본소득과 같은 직접적인 현금 이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기업보조금을 기금화하고 그 수익금을 국민에게 배당하는 방식은 증세가 아닌 방법으로 소득재분배를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혁신적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