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공부한 경제학을 예로 들어보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가의 이론도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약간이라도 논리에 벗어나는 경우 사정 없는 반론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유학시절 세계적 대가들이 세미나에서 그야말로 살벌하게 토론(대립)하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또 여러모로 학문적 성취가 덜한 학자라도 그런 경우 주저 없이 비판하곤 한다.
현실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또다른 양상이 전개될 수 있다. 정책은 이론의 현실에 대한 적용이라 할 수 있는데, 이론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정책 제안이 반드시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대가의 현실 인식이 반드시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그 하나가 될 것이다. 20여 년 전 아시아의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을 놓고 조셉 스티글리츠와 케네스 로고프가 벌인 논쟁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이렇게 대가 또는 권위자의 말도 틀리거나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무조건 따르진 않아야 한다. 특히 경제정책이란 전문가 여부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흔히 정책 제안은 훌륭한 의도가 좋은 말에 포장되어 이루어진다. 그리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어떤 ‘탁월한 전문가’의 보증을 곁들이는 경우가 많다. 세상만사가 그 주장대로만 풀려 간다면 좋겠지만 정책의 효과가 목표한 대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제안되는 정책을 비판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며, 특히 그 방면의 전문가의 이야기라 해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사실 말은 쉽지만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이렇게 비판적으로 되기는 어렵다. 사계의 권위자들의 말이라 하여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따라서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전문가 또는 권위자의 다른 의견에 귀 기울여 보고 판단을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말도 무조건 믿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유명 개그맨이 헌법 강의를 하고 여러 지자체가 과도한 강의료를 지급했다 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보수의 적정성 여부는 차치하고 어쨌든 그 지자체들은 그의 헌법 강의가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흔히 현대는 감성의 시대라고 한다. 확실히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딱딱한 이론보다 대중을 설득하는 데에는 훨씬 효과적이다. 그런데 너무 이런 데 치중하다 보면 인지도가 높거나 말재주가 좋은 비전문가가 전문지식을 설파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대중은 그가 한 이야기들을 진실로 믿어 버리게 된다.
물론 전문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부분이라도 전문가가 아니라 해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특히 경제정책 같은 분야는 이론과 현실이 조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비전문가의 관점이 신선하고 타당한 경우도 있다. 다만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할 것은 비전문가(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그 다른 분야에서 획득한 명성과 권위로 또 다른 분야의 권위를 무조건적으로 부여받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내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고, 따라서 온갖 ‘훌륭한’ 제안과 약속들이 난무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약속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문가, 비전문가들이 가리지 않고 동원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권자인 우리들이 정신을 차려야 할 때가 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대통령 선거에서는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무리한 주장(주로 듣기는 좋으나 문제가 많은)까지 남발되는 예가 많다. 이러한 주장의 옥석을 잘 가려야 함은 당연하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자칭 타칭 전문가의 의견을 잘 가려 들어야 한다. 극장의 우상을 섬기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