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디스플레이는 '미래 산업'…中에 선두 내주면 국가 안보에도 위협"

입력 2021-07-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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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년' 맞은 김성진 한국디스플레이협회 상근부회장 인터뷰

▲김성진 한국디스플레이협회 상근부회장
▲김성진 한국디스플레이협회 상근부회장

‘몰락, 위기.’

지난 몇 년간 디스플레이 산업에 꼬리표처럼 붙었던 말이다. 10년 훌쩍 넘게 압도적 1위 자리를 지켜온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간 게 결정적이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추격 속도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빨라지며 디스플레이 산업의 미래 성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위기 속에서도 기회의 싹이 발견된 때는 역설적이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병 시기다. 재택근무, 화상회의, 온라인 교육 등 비대면 경제활동이 확대됐고, 개인과 개인을, 개인과 직장을, 개인과 사회를 이어줄 도구로서의 디스플레이 역할이 두드러졌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에 열중해 온 국내 기업들의 실적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차세대 모빌리티 시장에서 폭발적인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

김성진 한국디스플레이협회 상근부회장<사진>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취임한 이후 1년 넘는 시간 동안 삼성·LG 등 대기업부터 중소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을 직접 톺아보며 현장 목소리 듣기에 열중했다. 그는 1일 이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그간 청취했던 업계 의견과 향후 디스플레이 산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전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서 중국과 경쟁…산업 중요성 제고해야=김 부회장은 취임한 이후 1년간 디스플레이 산업 중요도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수출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지 않고, 대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와 폴더블 디스플레이 등 글로벌 전자업계에서 주목하는 성과가 연달아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지원책 등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업계 현장에서 ‘국가 경제적으로 디스플레이 산업이 이바지하는 몫이 적지 않은데, 이에 비해 전반적인 관심도가 많이 낮아졌다’라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왔다”라며 “아무래도 디스플레이가 완제품이 아닌 부품이라는 인식에, LCD 사업 축소로 인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국내 기업들이 중국과 경쟁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2004년부터 14년간 세계 1위를 지켜온 LCD 시장 점유율이 불과 수년 만에 역전됐다. 대규모 정부 지원과 한국기업 인수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 경험을 기반으로 추격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중국이 세계 LCD 시장 점유율을 10%까지 끌어올리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OLED 분야에선 6년 만에 12%까지 치고 올라왔다. 우리 기업은 중국 기업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김 부회장이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과 중국 경쟁 체제로 흘러가고 있는 산업 구도에서 중국이 디스플레이 산업을 독식할 경우, 미래 산업뿐 아니라 국가 안보에도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라며 “기업 투자 확대와 더불어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지원 정책이 펼쳐져야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스플레이 산업과 ‘국가 안보’를 연관 지어 말한 건, 그만큼 디스플레이 산업이 미래 먹거리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자율주행차와 사물인터넷(IoT) 등이 보편화 되는 미래 사회에서는 사람과 기계를 이어주는 디스플레이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디스플레이 영역은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무신사 스탠다드 홍대'에서 LG디스플레이 모델이 투명 OLED로 신상 의류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제공=LG디스플레이)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무신사 스탠다드 홍대'에서 LG디스플레이 모델이 투명 OLED로 신상 의류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제공=LG디스플레이)

기존 디스플레이의 주요 사용처가 TV, 스마트폰 정도에 그쳤다면, 자동차, 교육, 의료, 국방 등 산업 전 분야까지 폭넓게 확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완제품 내 단순 부품이 아닌, 제품의 특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디스플레이가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ㆍLG 등 국내 대표 디스플레이 기업이 폴더블이나 투명 OLED 등 새로운 폼팩터(기기 외형) 개발에 열중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 부회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도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디스플레이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한국이 선도하는 OLED 기술을 이용하여 수요시장을 확장해 간다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했다.

◇기술 유출·탄소 중립…업계 남은 과제는=풀어야 할 과제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심화하고 있는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이 꼽힌다. 산업기밀보호센터에서 공개한 지난해 산업별 기술유출현황을 살펴보면, 디스플레이가 9건으로 단일 사업 중에선 가장 많다.

최근엔 OLED 구동칩을 주력 사업으로 영위하는 반도체 기업인 매그나칩반도체가 중국계 사모펀드에 매각을 진행하자, 한·미 규제 당국이 직접 나서 매각이 성사됐을 때 기술 유출 가능성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김 부회장은 이와 관련해 “OLED는 LCD보다 기술 난도가 높고 공정 효율 향상에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중국은 OLED DDI를 생산하는 매그나칩 인수를 통해 기술 습득을 시도하고 있다”라며 “이러한 OLED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가면 중국의 추격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OLED 경쟁력을 지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핵심 기술 유출에 대한 보호가 중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김 부회장은 기술 유출 문제에서 핵심은 ‘인력’이라고 봤다. 산업기술보호법 등으로 이직을 통한 산업기술 해외유출 시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편법을 통해 이직하는 경우가 많아 유출 규모나 정확한 피해를 추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가 따로 지정한 국가 핵심기술이 아닌 일반 산업기술이 유출되는 경우엔 법적 처벌 하한선이 없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도 매번 반복된다.

그는 “업계는 기술유출에 대응하고자 자발적으로 보안 가이드를 개발하고, 정부는 국가핵심기술 개정과 기술유출 방지에 힘쓰고 있으나,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기술유출 보호를 위해서는 산업 관계자뿐 아니라 정부, 학계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 삼성디스플레이 신입사원들이 '그린가드 골드' 인증을 획득한 OLED 노트북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디스플레이)
▲ 삼성디스플레이 신입사원들이 '그린가드 골드' 인증을 획득한 OLED 노트북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디스플레이)

산업계 화두로 떠오른 ‘탄소중립’도 중대한 고민거리다. 디스플레이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대표 업종 중 하나로 꼽힌다. 저탄소 전략에서 속도 조절을 하지 못한다면 산업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김 부회장은 “디스플레이 업계는 탄소중립을 위해 저전력 OLED 디스플레이 개발과 지구온난화지수가 낮은 가스로 대체하는 등 자발적인 노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라며 “발광효율이 높은 OLED 유기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매년 소비전력을 낮춘 제품을 출시하고, 온실가스양을 90% 이상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감축 설비 투자도 진행 중”이라고 짚었다.

디스플레이협회를 비롯한 산업계와 학계도 이러한 기업들의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김 부회장에 따르면, 디스플레이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의 기술 개발 예비 타당성 조사사업을 산·학·연 공동으로 준비 중이다.

그는 현재 디스플레이 산업의 상황을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또 한 번 개척해 나가야 하는 상황”으로 빗대면서, “정부 차원의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다양한 성과보수 형태의 정책 지원과 함께 국가 차원의 연구ㆍ개발(R&D) 지원 마련이 동반돼야 한다”라고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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