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 기대감에 주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비싼 돈을 들여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다. 주식이 쌀 때 사들여 경영권을 탄탄히 하는 동시에 계속되는 하락장 속에서 주가 하락을 막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린 것이다. 주가 부양 움직임으로 꼽히는 ‘소각’은 드물었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공시한 기업은 각각 47곳, 11곳이다. 이는 코로나19 발병으로 인한 주가 급락에 자사주 매입·소각 기업 수가 각각 111곳, 17곳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로 늘어났던 지난해를 제외하면 지난 2010년 이래로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 5월, 롯데하이마트는 자사주 47만2000주를 장내 매수 방식으로 취득기로 했다. 매수 규모는 발행 주식 수의 2%다. 롯데하이마트의 자사주 매입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황영근 롯데하이마트 대표는 “이번 자사주 매입은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도 회사를 성장시켜 주주가치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중장기적 주주 친화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NHN 역시 주가안정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15만 주를 장내 취득했다.
현대모비스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올해 자사주 2441억 원어치를 취득기로 했다. 현대모비스는 2019년 2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2021년까지 3년간 약 1조 원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계열사다.
미래에셋증권은 연초에 밝혔던 1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발표 이후 3월 말까지 1분기 동안 총 1024억 원 규모의 보통주 1050만 주(유통 주식수의 약 2.1%) 매입을 끝내고 이 중 1000만 주 소각을 완료했다.
미국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에 뛰어들었다. 백신 접종 가속화에 따라 경제 정상화가 가시화된 1분기 S&P 500기업은 1520억 달러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지난 4월에는 애플이 자사주 900억 달러 규모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구글도 자사주를 500억달러어치 매수하기로 했다.
자사주 소각은 주가 상승의 재료로 알려졌다.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여주는 효과까지 있다.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이란 열차에 사람이 많이 붐비니 승차권값을 환급해주고 일부 승객을 내리게 한 셈인데, 남은 승객이 얼마나 쾌적할지는 그 열차가 앞으로 어떻게 달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