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프리즘] 기업의 앞서가는 노력

입력 2021-06-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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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전 에스케이 사장

지난달 열린 한미정상회담은 우리 기업의 역할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는 점에서 큰 차별성이 있었다.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업의 앞서가는 결정이 없었다면 오늘도 없었다”며 성공의 비결을 기업에 돌렸다.

앞서 4대 그룹은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394억 달러(약 44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계획을 발표했다.분야도 미국이 희망하는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첨단 분야가 모두 망라됐다. 기쁨에 넘친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최태원 SK 회장 등을 일어서게 하고 세 차례나 “쌩큐”라 말하며 힘차게 박수를 쳤다. 백악관의 오찬 메뉴를 햄버거에서 크랩케이크로 바꾼 것은 기업들이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기업 총수들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이 수행하는 관행이 생긴 것은 1981년 6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아세안 순방이 효시였다. 이때에도 기업의 ‘앞서가는 결정’이 있었다. 아세안이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했던 1979년에 이미 재계는 ‘한·아세안 경제인 클럽’을 설립해 국제무대에서 갓 부상하기 시작한 아세안과의 경제협력을 모색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순방을 수행하면서 싱가포르의 래플스시티, 말레이시아의 페낭대교, 인도네시아의 산림개발사업 등을 수주했다. 1981년에 83억 달러의 해외건설 수주가 있었다. 그런데 57건 48억 달러의 사업이 아세안 지역에서 한국 기업의 손에 담겨졌다. 당시 경제인단의 단장은 정주영 전경련 회장이었는데 삼성은 이건희 부회장이 참석했다. 국내 최대인 삼성그룹의 공식 후계자로서 이건희 부회장이 재계에 데뷔한 순간이기도 했다.

‘기업의 앞서가는 결정’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와도 맞물려 있다. 1995년 초 당시 최종현 전경련 회장은 도쿄 주재원이었던 필자도 모르게 비밀리에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의 도요다 쇼이치로 회장에게 월드컵의 공동주최를 제안하고 이듬해 이를 성사시켰다.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격랑에 휩싸인 한일관계의 복원을 위해서였다. 월드컵이라는 10년짜리 공동사업을 하면서 두 나라는 문화를 교류하며 생각을 공유했다. 마침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청사진이 양국 정부에 의해 발표되기에 이르렀고, 이때의 한일 관계는 역대 어느 시점보다 좋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나라가 부도가 났던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기업은 앞서가는 결정을 했다. 당시 정부가 예측했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8억 달러, 그러나 재계는 500억 달러까지 흑자가 가능하다고 봤다.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은 밖에 나가 보니 돌멩이도 수출되겠다며 재계의 노력을 결집했다. 결국 그해 416억 달러, 이듬해인 1999년에는 284억 달러의 국제수지 흑자를 일궈냈다. 국민들의 금 모으기로 생긴 달러까지 더해 2001년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고 경제주권을 회복했다.국제수지 500억 달러 흑자는 수치상의 목표가 아니라 위기 극복의 도화선이자 국민적 자신감의 회복이었다.

미국 비자를 취득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세종로에 위치한 주한 미국 대사관 담벼락에는 침낭까지 챙겨 노숙하는 진풍경도 보였다. 대기표에 5만~10만 원의 웃돈이 얹혀져 암거래가 될 지경이었다. 한미 재계회의의 조석래 회장은 이를 국민적 자존심의 문제로 봤다. 미국의 10대 교역국인 한국에 대한 부당한 대우라고 보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나가 있는 미국 현지의 상·하원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그가 비자면제 프로젝트를 청원한 것은 1996년, 마침내 2008년 10월 17일 미국 정부는 비자면제 프로그램의 신규 대상국가로 우리나라를 포함시켰다. 12년 만의 성사였다. 국민들의 짓눌린 자부심을 회복시키는 데 ‘기업의 앞서가는 노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앞서가는 결정이 항상 옳았다는 것은 아니다. 또 모두가 성공했던 것도 아니다. 환경은 지금도 기업이 풀어야 할 커다란 사회문제이며 반(反)기업 정서도 쉽게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앞에 놓인 미완의 숱한 과제는 기업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세계가 기업의 노력을 도와주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기업의 앞서가는 노력이 국익 창출이라는 뜻밖의 성과를 도출해 낸 것처럼 우리는 언제 어디선가는 분명히 그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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