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이렇다 할 북미 간 협상의 진전이 없었다. 미국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은 휴지조각처럼 날아갈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문재인 정부는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에서부터 북미 간 협상이 진행되어야 함을 바이든 외교안보 라인에 줄기차게 설명해 왔다. 김정은 총비서가 직접 서명한 것이고,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 협상을 한다 하더라도 싱가포르 합의 이상의 총론적 합의를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5·21 한미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설득을 받아들였고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양 정상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원칙의 재확인과 성 김 대사의 대북정책특별대표 임명은 북미 간 총론적인 기싸움 없이 바로 각론적 실무협상이 재개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언급대로 이제 공은 북한에 넘어갔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6월을 북한이 대화를 놓치면 안되는 적기라고 설명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북한도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를 면밀히 리뷰하면서 대화의 시기와 방식 등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본다. 박지원 국정원장도 “한미정상회담 전후로 소통이 이뤄졌다”고 언급하였다. 사안별로 공격성 평가를 하겠지만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하게 될 것”이라는 대화 재개의 예측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북한이 한미정상회담 이후 대남 대외 비난을 비교적 자제하고 있는 것도 대결보다는 대화로 나올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에 동의하게 한다.
그런 가운데 북한이 갑작스럽게 소집한 당 전원회의는 조금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지금 김정은 정권에 가장 절박한 것은 북미관계도 남북관계도 아니다. 정권적 사활을 걸다시피 했던 지난 당 대회를 통해 제시된 과업이 제대로 관철되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가장 절실하다. 6월 당 전원회의 소집도 상반기 경제 부문 공과를 평가하고 하반기의 추진 일정을 마련하는 정해진 수순이다. 혹여 대외 관계 메시지가 없거나 약하더라도 소원해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김여정 담화를 통해 수면 위에서는 기싸움을 하고 수면 아래에서는 접촉과 대화의 메시지를 발산할 수도 있다.
물론 미국과의 대화 모색이 6월이 될지 아니면 7월, 늦어지면 하반기에 전개될지 그 시기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자립형 독자생존을 모색하는 북한이 내부정세를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대외정세의 안정이 필수적이다. 현재 북한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내부 상황, 코로나 국면, 중국과의 소통 등을 종합하여 북한은 대화의 장에 나오는 시점을 가늠하게 될 것이다. 경험적 사례에 비춰 보면, 북한이 정중동 속에서 돌연 맹렬한 비난을 하거나 긴장관계를 인위적으로 조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일희일비하지 말고 한미정상회담에서 재확인한 ‘대화를 통한 외교적 노력’을 끊임없이 전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향한 한미 간의 첫 단추는 이미 잘 끼워졌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아직은 지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동이 틀 무렵의 어스름처럼,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3주년을 맞아 한반도 평화의 전기가 다시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