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진짜 별의 순간

입력 2021-06-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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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숙 사단법인 한국재도전중소기업협회 회장

최근 출판된 ‘공정한 사회를 향하여’란 책의 저자는 신평 변호사로, 1993년 판사 재직 당시 판사와 변호사 간 돈거래 등을 내부 고발해 헌정사상 제1호로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된 분이다. 그 전에 출간된 저서들과 SNS활동을 통해서도 그는 꾸준히, 법원 내부의 비리와 문제 인사들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을 서슴지 않았는데, 실제로 만나 보면 그윽하기 그지없는 이분의 이 변하지 않는 강건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궁금해하던 차, 이번 신간을 읽으면서 그 의문이 풀릴 수 있었다.

그것은 최고 엘리트로 살아온 법조인이 농부의 시간을 보내며 자연에 순응하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었다. 보통 강직함으로 ‘공정’을 얘기하지만, 세상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없는 ‘공정’은 쉽게 부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뜻하다는 건 다른 사람의 진짜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법의 현실에 대해선 잘 몰랐던 나는 그를 만나게 되면서 기득권층의 자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짜인 현행 대학 입시 제도와 더불어, 사회적 사다리 걷어차기의 대표적 사례가 현 로스쿨 제도라는 것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고, OECD 37개 국가 중에서 우리의 사법 신뢰도가 꼴찌라는 점 또한 심각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그 실체가 정확하게 보이지 않고 기득권자와 그렇지 않은 이들로 구분하여 현상을 들여다보면 온갖 이해하기 힘든 모습들이 갑자기 정돈되며 우리 눈앞에 선명하게 나타난다’는 문장은 특히 너무 뼛속 깊이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지난 5월 28일 청년창업 활성화 방안이 대대적으로 발표되었다. 2만3천명에게 창업교육과 멘토링을 제공하고 실전창업 준비금과 생애 최초 청년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는등 청년 창업기업대상 정책자금을 22년까지 5천억 원 규모로 확대한다고 한다. 더욱이 총 4대 분야의 청년창업 지원 정책에 재도전이 포함돼 있다는 건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청년창업기업의 자금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특별 보증 프로그램을 최대 6억원까지 보증 공급하겠다는 점과 성실실패기업에 대한 채무 감면 비율을 90프로에서 95프로로 확대하겠다는 것을 보고선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보증기관의 재보증 금지 조항에 대한 삭제와 채무 기록의 원천적인 소각 대책 없이 보증 대출 규모를 늘리고 채무 감면 비율만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사회 경험도 아직 미천한 청년들에게 창업자금 지원이란 명목의 달콤한 독약을 주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청년창업기업들의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라는게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며칠 후인 6월 2일에는 정부 부처들과 청년 스타트업 대표와의 현장간담회 보도가 있었는데, 직전에 발표된 청년창업 활성화 방안이 무색하게 이들 청년 스타트업 대표들이 얘기한 건, 청년 창업가들이 물어볼 곳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창업 전반적인 멘토링을 받을 곳이 없고 정부기관을 만나는 것도 힘들며, 창업패키지 과정에 포함돼 있는 멘토링은 대부분 형식적이다 보니 만족도가 낮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직접 뛰는 분 등 기업가들이 원하는 멘토들에게 멘토링을 받고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재도전 기업가들도 늘 공통적으로 얘기해 온 부분이며 청년창업과 재도전 창업의 활성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손꼽는 점은 똑같이 규제 완화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청년 정책이나 재도전 정책에서 변함없이 제기되는 호소는 왜 늘 외면받는 것일까. 바로 현장에서 고통받고 있는 기업가들의 애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따뜻한 노력보다 ‘이론상 문제없다’는 자신만의 공정한 기준에 함몰돼 있는 정책 기득권자들의 강직성 때문이다.

요즘 사회 전반적으로도 어떤 정책적 이슈가 부각될 때마다 ‘학자들의 이론과 그 이론의 논리적 관계를 누가 더 명징하게 입증하고 있는가’에만 서로 열을 올리는 것을 목도한다. ‘이렇게 힘든 현실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가’를 가슴 뜨겁게 설득하는 기득권자들은 구경도 할 수 없다.

요즘 청년들과 가까이 대면할 일이 많은데, 재도전 기업가들의 분노는 쉽게 표출되는 데 반해 생각 이상으로 분노 지수가 높은 청년들의 분노는 깊숙이 감춰져 있거나 다른 방향으로 돌출되는 양상을 보며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공정을 강요하는 불공정한 세상’은 늘 불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활화산이다. 잠재워진 불씨를 안심하지 말고, 건강하게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이 더 중요할 수 있다.

2019년 서울대 졸업식장에서 방시혁 대표가 ‘나를 만든 건 분노’라는 축사를 직접 들으며 많은 공감이 된 적이 있다. 지금 분노하고 있다면, 비축해 둘 결정적 카드가 하나 더 생긴 것으로 생각하는 건 어떤가.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은 열린 마음으로 현실을 들여다볼 줄 아는 기득권자들의 변화가 우선돼야 하겠지만, 현재는 힘들고 우울할 뿐인 청춘들이 언젠가 꼭 이 세상을 치고 올라가는 진짜 ‘별의 순간’을 맞게 될 때라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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