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청약제도 이제 그만 바꿔라

입력 2021-06-02 14:40 수정 2021-06-02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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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들어 주택 청약제도가 20번이나 바꿨다. 1년에 다섯 번꼴로 청약 요건 등을 담은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이 개정된 것이다. 특정 연령대와 계층을 만족시키기 위해 각종 ‘땜질’이 더해지면서 청약제도는 말 그대로 ‘누더기’가 돼버렸다. 난수표처럼 복잡해진 청약제도에 전문가들조차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런 청약제도가 또 바뀔 것 같다. 정부·여당이 최근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 검토에 들어갔다고 한다. 청약가점 쌓기에 불리한 20·30세대의 당첨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제도를 손보겠다는 거다. 겉으로는 내 집 마련 꿈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당첨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속내는 따로 있다. 집값 폭등으로 돌아선 젊은 층의 표심을 잡겠다는 의도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문재인 정부는 젊은 층에 많은 혜택이 가도록 청약제도에 이미 여러 차례 메스를 들이댔다. 대표적인 게 추첨제 물량 확대다.

국토부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8·2대책을 통해 청약 점수가 높은 순으로 당첨자를 뽑는 가점제 비중을 크게 높였다.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분양하는 전용면적 85㎡ 이하 물량은 청약가점으로만 당첨자를 가리도록 한 것이다. 전용 85㎡ 초과 추첨제에서도 무주택자를 우선으로 선정토록 했다.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 길고 부양가족 수도 많은 40·50세대 이상 무주택 중장년층에게 주택을 우선 공급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가점이 낮은 젊은 층이 청약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다”라는 불만이 잇따르자 가점제는 줄이고 추첨제는 늘리는 쪽으로 정책 방향이 바뀌었다.

정부는 젊은 층에 불리한 일반공급 대신 ‘우회로’인 특별공급(특공) 기회도 늘렸다. 일반공급은 무주택 기간이 중요해 나이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2018년에는 신혼부부 특공 물량을 2배(민영 20%, 공공 30%)로 늘리고 지난해엔 공공분양에만 있던 생애 최초 특공을 민영주택에도 도입했다. 생애 최초 특공은 소득·자산 요건만 맞으면 추첨으로 입주자를 뽑는다. 청약가점이 낮은 20·30세대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올 들어선 더 많은 신혼부부가 특공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소득 요건도 대폭 완화했다. 지난 2월부터 연봉이 1억 원인 맞벌이 부부도 신혼부부 특공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신혼부부·생애 최초 특공 확대로 ‘금수저’에 해당하는 일부 계층만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출 규제가 여전한 상황에서는 특공의 소득 기준을 높여도 부모의 지원을 받는 ‘금수저’들만 실제 분양대금을 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젊은 층을 위한 제도가 현금 부자들의 잔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압권은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이다. 오는 7월부터 연말까지 네 차례에 걸쳐 인천 계양 등 수도권 3기 신도시와 주요 택지지구에서 3만2000가구가 사전청약 물량으로 나온다. 이 중 1만4000가구는 청년 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한 신혼희망타운으로 공급된다. 나머지 1만8000가구 중 신혼부부(30%)·생애 최초(25%) 특공이 1만 가구 정도다. 사전청약 4가구 중 3가구가 20·30세대 젊은 층 몫인 셈이다.

당첨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 무주택 중장년층에선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기존 제도를 믿고 청약통장을 장기 보유하며 무주택 기간을 채워왔는데 갑자기 젊은 세대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중장년층 사이에서는 ‘젊은 게 벼슬’이라는 자조까지 나온다.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다. 그렇더라도 특정 계층 위주로 설계되는 주거 정책은 결코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주택 청약은 어차피 정해진 파이(공급 물량)를 수요자들이 나눠 먹는 ‘제로섬 게임’이다. 한쪽이 이득을 보면 또 다른 쪽은 피해를 보는 구조다.

잦은 청약제도 변경은 세대·계층 갈등을 촉발하고 시장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정부·여당은 한정된 파이를 놓고 한쪽에 줬던 것을 뺏어 다른 한쪽에 주는 조삼모사(朝三暮四)식 주택 청약 정책을 더 이상 내놓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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