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카고' 속 록시 하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이미지는 '섹시'다. 불륜남을 살해한 혐의로 교도소에 갇혔지만 스타가 되고 싶다는 꿈은 포기하지 못하는 야망도 록시를 설명할 수 있다.
"본능적으로 하려 해요."
민경아는 록시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보다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말과 행동이 자기 멋대로인 록시를 밉지 않고 사랑스럽게 보여주기 위해선 '이유'를 찾아선 안 된다는 연출의 조언도 있었다.
"록시는 끼를 부리려는 친구가 아니에요. 사랑스러움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친구예요. 그게 표현되지 않으면 힘들었어요. 종이 한 장 차이예요. 많이 울기도 했죠."
민경아의 변신은 늘 반갑다. 자신이 뽑힐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나 2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록시로 관객을 만나고 있는 민경아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작 '렌트' 때보다 많이 야윈 것 같다.
"정말 살이 많이 빠졌어요. 새로운 뉴캐스트인 저나 티파니 언니, 그리고 벨라 역에 도전한 공주 언니는 본 연습 한 달 전에 먼저 연습을 시작했어요. 그때 정말 빡빡하게 했어요. 살이 점점 쭉쭉 빠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매일 하루의 패턴이 비슷한 영향도 있어요. 아침 일찍 나가서 다 같이 몸을 푸니까 저절로 조절됐어요."
- '시카고' 참여 전과 달라진 부분은.
"'시카고'가 이렇게 메시지가 깊은 작품인지 몰랐어요. 화려한 쇼 뮤지컬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공연을 계속하다 보니 동작 하나하나에 스토리가 담겨있고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록시는 왈가닥이고 생각 없이 단순해 보이는 캐릭터 같아도 전달하는 내용이 뚜렷한 인물이에요. 그래서 가장 많이 들은 게 '너 안에 록시가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라는 말이었어요. 록시가 어떻게 살아왔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진실하게 관객에게 말해주면 된다고요."
- 록시와 민경아는 어떤 면이 닮았나.
"제가 공연한 걸 다 봐온 친구들이 '시카고'를 보고 제게 '찰떡'이라고 하더라고요. 의도 없이, 솔직해서 순수한 모습이 저와 닮았대요. 팀 내에서도 앙상블 오빠들이 '너랑 록시가 닮아있지?'라고 묻더라고요. 처음엔 당황했는데, '잘 어울려'라는 이야기였어요. 거침없고 예쁜 척 안 하는 게 닮았나 봐요."
- 록시가 미디어에 목메는 것과 닮은 지점도 있나.
"플래시가 막 터지는 걸 경험해본 적이 별로 없어요. 몸소 느낄 만큼의 실감은 잘 못 했어요. 오히려 이 작품을 통해 제가 나중에 스타가 되더라도 한순간일 수도 있고 지금 주목받는다고 해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모든 게 물거품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하게 됐고요. 저를 많이 눌러주는 작품이에요."
- 정신력이 강한 것 같다.
"저보고 주변에서 멘탈이 세다고 말하더라고요. 무너질 땐 한없이 무너지는 유리 같은 정신력이기도 하지만요. 저는 기분이 좋아지려고 하면 오히려 누르려고 해요. 장점은 받아들이고 단점은 이겨내려고 하는 편이죠. 와르르 무너져도 금방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어나기도 하고요. 제가 잘한다고 제 인생이 너무 잘 되고 좀 못해도 인생이 안 좋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해왔어요."
- 마지막에 벨마와 'Nowadays' 부를 때 느낌은.
"록시는 긍정적이고, 무너져도 그 앞을 계속 생각하는 친구예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처음으로 겪어보는 등골 시렵고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도 좌절감을 이겨내는 친구예요. 극이 진행될수록 록시는 성숙해져요. 'Nowadays' 넘버를 부를 땐 모든 걸 받아들인 채로 옛날에 어땠건 지금 현재를 살아갈 것이고 하고 싶은 걸 해낼 거라는 걸 보여주죠. 정말 멋진 장면이에요. 기승전결이 되면서 오는 짜릿함이죠."
- 민경아의 변신을 반기는 관객이 많은 것 같다.
"사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제가 '베어 더 뮤지컬'을 하면서 원미솔 감독님을 알게 됐는데 '지킬 앤 하이드' 루시 역할 오디션을 보라고 하셔서 보게 됐어요. 원 감독님은 제가 어떤 소리를 가졌는지 아시기 때문이죠. '웃는 남자' 리허설 하면서 프랭크 와일드혼을 만나게 됐는데, 그때 루시 오디션 봤다고 말했더니 '노(No)'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완전히 엠마라면서요. 그래서 얼떨결에 엠마 노래로 오디션 영상을 다시 내게 됐어요. 그렇게 엠마가 된 거예요. ''몬테크리스토'의 발렌타인 역할을 맡아 지방부터 돌면서 대극장 무대에 서면서 예쁘고 아기자기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고 이미지가 굳어졌던 것 같아요. 대극장 전엔 통통 튀는 역할도 많이 했어요. '고래고래'에선 머리 커트하고 시니컬한 역할도 맡았고 '인터뷰' 하면서 4살, 17살, 엄마 역할까지 했죠. 그때 많은 걸 보여드릴 수 있어서 정말 재밌었어요. 목소리는 까랑까랑해도 저는 저음이 편하거든요."
- 오히려 청순한 캐릭터가 도전이었겠다.
"엠마는 성악 하신 분들이 많이 하는 역할이잖아요. 저는 그 부분이 정말 약해요. 그래서 오히려 큰 도전이었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역할이었고요. 그래서 마지막 공연 날 엄청 울었어요. 모든 짐을 내려놨다는 생각에 후련해서 울었어요. 하하 친구들도 엠마 하는 걸 보면서 '웃기다'고 했어요. 절 아는 사람은 제가 갸륵한 역할을 할 때마다 빵 터지죠. 하지만 엠마를 시켜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커요. 제 안 어딘가에 있는 그런 면을 봐주신 거잖아요. 루시 역할 도전이요? 시켜만 주신다면 감사히 하죠." (웃음)
- 시카고 하면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인가.
"커튼콜이 정말 특별해요. 배우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너무 멋지지 않아요? 커튼콜 되면 경기를 잘 마친 느낌이 들어요."
-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로 옮겼다. 어떤 도전을 해보고 싶은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노래를 배제하고 연기로서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커요. 영화 오디션도 열심히 보고 있어요. 딱 맞는 캐릭터를 만나서 색다른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뮤지컬에 다음 역할은 소년처럼 털털한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레미제라블'의 에포닌, '고스트' 몰리처럼 단단한 캐릭터요. 아, 절제되고 세련된 벨마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언니들이 쓴 역사를 잘 보고 따라가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