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백신의 세계적 공급 확대 방안에 대한 논쟁이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세계보건기구(WHO)와 더불어 백신 생산 관련 지식재산권의 잠정 유예를 주장하는 반면 유럽연합(EU)은 백신 원자재 및 완제품에 대한 수출 자유화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가 자체 개발한 백신을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면서 백신 공급은 강대국 간 패권경쟁의 정치역학적인 이슈로 변하고 있는 상황이다.
백신은 접종받은 사람의 비중이 클수록 감염과 전염성을 낮춘다는 점에서 외부성(externality)이 큰 재화이다. 특정 재화가 외부성이 있는 경우 개발자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해주어 혁신에 대한 동기 부여를 침식하지 않도록 유인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보상을 위해 마련된 것이 지식재산권 제도이다. 코로나19 백신같이 외부성이 국경을 넘어 발생하는 경우에는 지식재산권에 대한 국제적인 보상이 개발국 정부가 단독으로 보상해 주는 것보다 합리적이라는 점에서, 이 제도는 현대 기술경제 시대의 개발품 중 압권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러한 지식재산권을 유예하는 방안에는 동기 부여 외에 극복해야 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백신 생산능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경우 지재권을 풀어줘도 생산능력이 없어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유엔 국제해양법(Law of the Sea) 회의에서 있었다. 심해저 광물의 채취와 채취 광물의 배분 문제에 대해 1982년 타결된 심해저 광물 개발 방안이다. 수심 3000m 이상의 심해저 자원, 특히 망간괴를 채굴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는 당시 미국, 일본 등 소수의 기술선진국에 불과한 상황에서 공해상에 있는 심해저 광물에 대한 개발 허용은 기술을 가진 몇몇 선진국의 특혜를 허용하는 것이 되었다. 당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선진국이 개발하되 2광구를 동시에 개발하여 그중 한 광구로부터의 수입은 개발한 국가가 갖고, 나머지 광구의 수입은 유엔 개도국 개발기금에 기탁하는 방안이었다.
이 아이디어를 백신에 응용하면 개발국인 미국, 영국, 독일이 생산한 백신의 절반을 코백스(COVAX)에 기탁하여 생산능력이 없는 개도국에 공급하고, 생산능력이 있는 다른 국가들은 자체 생산하여 공급하는 방식이다.
단기적으로는 유럽의 주장대로 개발국가가 필요 이상 보유하고 있는 잉여 백신에 대한 수출을 자유화하여 구매 능력이 있는 국가에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안의 문제점은 지재권 유예의 비용을 사실상 백신 개발국이 전액 부담한다는 데 있다. 외부성이 국경을 넘어 발생하는 경우 사실상 혜택을 입은 국가 모두가 상응하는 부담을 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백신 개발국과 개도국 간의 공정성 보장을 위해 도입할 수 있는 배분-선택(Divide and Choose) 절차와 같은 제도보다는 미국, 영국, 독일과 러시아, 중국에 대해 세계 리더국가로서 백신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게 함으로써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로서 말이다.
코로나19의 일상 ‘독감화’가 거론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중장기적으로는 개발국 정부가 리더로서 지식재산권을 유예하는 방안과 더불어 개발도상국의 기술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코백스 기탁 및 유럽식의 수출자유화 방안을 단기적으로 병행 추진하는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