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에 원리금보장형을 포함하는 문제를 두고 보험, 은행 업계와 금융투자업계 간 치열한 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보험, 은행업계는 디폴트옵션에도 원리금보장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금융투자업계는 디폴트옵션 도입의 취지가 무색해진다고 반박한다. 여야 간 대립으로 이어지면서 디폴트옵션제도 도입을 위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근퇴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2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은 은행이 51%를 차지하고 있다. 생명보험(22.3%), 금융투자(20.2%), 손해보험(5.2%), 근로복지공단(1.3%) 순으로 퇴직연금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손해보험사는 전체 퇴직연금 자산의 98.7%를 원리금보장형으로 들고 있다. 생명보험(94.4%), 은행(86.2%) 역시 대부분의 자금을 원리금보장형으로 운용하고 있고, 금융투자업계가 72.5%로 비교적 낮은 원리금보장형 비중을 보였다.
최근 디폴트옵션 도입에 소음이 들리는 이유는 원리금보장형 도입 때문이다. 보험, 은행업계는 원금을 잃지 않는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는 가입자도 있는 만큼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형을 넣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금융투자업계는 그렇게 되면 디폴트옵션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국가 중 원리금보장형을 넣은 나라는 일본뿐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는 퇴직연금을 원리금이 보장되는 안전자산에 넣고 있는데,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 고객의 자금이 빠져나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면서 “은행업계는 펀드 등 다른 상품을 팔아 수수료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 완화적인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선 금융투자업계는 디폴트옵션 도입의 핵심이 ‘수익률’인 만큼 원리금 보장상품을 포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디폴트옵션 제도는 주식과 펀드를 중심으로 가져가면서 수익률을 높여보자는 취지”라면서 “장기적 성과가 중요한 퇴직연금에서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서라도 수익률을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폴트옵션을 도입한다고 해서 원리금 보장을 원하는 가입자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가입자가 원하면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운용지시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민호 금융투자협회 연금지원부장은 “오랜 기간 적격 연금상품을 운용하면서 충분한 수익이 발생하고, 이를 지키고 싶은 가입자는 언제든지 디폴트옵션을 적용받지 않고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운용지시 변경이 가능하다”면서 “디폴트옵션은 ‘의무’가 아니라 기존 DC에서 가입자의 선택지를 확대한 옵션”이라고 설명했다.
은행 보험업계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호하고, 노후 소득에 대한 안정적인 수급권을 확보하려면 원리금 보장형 상품도 포함돼야 한다고 반박한다. 약세장에서는 원금 손실도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2018년 퇴직연금 평균수익률이 -4.5%까지 떨어졌다.
보험연구원은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 논의와 고려사항’이란 보고서에서 “가입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퇴직연금 자산이 실적배당형에 투자돼 손실이 발생할 경우, 퇴직연금 제도에 대한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가입자가 디폴트옵션 선택 시 원리금보장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제도의 안정성과 수용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디폴트옵션제도 도입을 위한 근퇴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국회 관련 상임위에서 논의 중이다. 19대 국회 때부터 발의된 법안이지만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된 법안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다음 달 초 3개의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대상은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되 구성상품에 실적배당형만을 넣어야 한다는 안호영·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건과 실적배당형 외 원리금보장형도 포함해야 한다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안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