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도덕성에 흠결이 없는 유능한 인재를 원했다. 성공적 인사도 자신했다. 그렇지 않고선 자신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는 이런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을 리 없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5개 허들을 넘을 유능한 인사를 찾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청와대가 믿었던 인사들도 대부분 한두 가지가 걸렸다. 장관 후보자로 낙점한 인사들은 스스로 손사래를 쳤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었다. 여기에 코드까지 끼어들면서 인재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인사 참사는 예고된 재앙이었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현 정부 고위공직자로는 10번째 낙마자다. 장관 후보자로는 안경환(법무) 조대엽(고용노동) 박성진(중소벤처기업) 최정호(국토교통) 조동호(과학기술정보통신)에 이어 6번째다. 야당이 지명 철회를 요구한 임혜숙 후보자의 장관 임명으로 ‘야당 패싱’ 장관은 32명으로 늘었다. 노무현 정부(3명)와 이명박 정부(17명), 박근혜 정부(10명)에 비해 훨씬 많다. 5대 기준이 유효했다면 낙마자는 더 늘었을 것이다. 상당수 후보자는 일부 기준이 유야무야된 덕분에 살아남았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인사로 고전했다.
비단 문재인 정부만의 얘기가 아니다. 인사는 역대 정권의 골칫거리였다. 지난 20여 년간 낙마한 총리후보자만 6명이다. 청문회가 도입된 김대중(DJ)정부의 장상·장대환 후보자와 이명박 정부의 김태호 후보자, 박근혜 정부의 김용준·안대희·문창극 후보자가 청문회 벽을 넘지 못했다. DJ정부의 첫 총리 인준에는 무려 175일이 걸렸다. 청문회 벽에 막힌 장관급 후보자만 36명이었다.
청문회는 후보자 지명과 낙마, 임명 강행의 악순환이었다. 검증을 통해 국민 눈높이의 적임자를 찾자는 당초 취지는 온데간데없다. 검증이 아닌 정쟁의 장이었다. 야당은 정권에 타격을 주기 위해 후보자 흠집내기에 올인했다. 애당초 능력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여당은 무조건 후보자 감싸기로 일관했다. 청와대 거수기나 다름없었다. 신상털기식 검증에 많은 후보자들이 장관자리에 오르지도 못한 채 스타일만 구겼다. “장관 시킬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인재강국 소리를 듣는 나라에서 장관감을 찾기 어렵다는 얘기 자체가 웃픈 현실이다. 후진적 정치문화와 사회 지도층의 도덕 불감증이 빚어낸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무엇보다 지도층의 도덕 불감증이 심각하다. 장관 후보자들의 위장전입은 기본이고 세금 탈루가 부지기수다. 부동산 투기와 논문 표절, 공무출장에 가족 동행, 표창장 위조 의혹까지 불거졌다. 돈 있고 백 있는 사람들의 법망을 피한 편법과 반칙들이다.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공정·정의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다. 도덕 재무장 운동이라도 펼쳐야 할 판이다. 각성이 필요하다. 코드인사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코드에 매달려 정권 스스로 인재풀을 좁혔다. 이 땅에 왜 인재가 없겠는가. 내 식구만 찾으려 하니 한계에 부닥친 것이다. 적임자가 없다고 푸념할 게 아니라 우물안 인사와 부실한 검증부터 반성할 일이다.
이참에 청문회 제도는 개선해야 한다.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고, 정책 검증은 공개 청문회로 하는 투트랙 청문회가 맞다. 후보자의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되는 건 곤란하다. 검증공포에 후보자들은 장관자리를 고사한다. 문제인사는 당연히 걸러야겠지만 도덕성만 고집하면 유능한 정부는 어려워진다. 상대적으로 검증 통과가 수월한 정치인과 관료의 독무대가 될 수 있다. 도덕적 잣대가 현실과 괴리돼 있다면 손볼 필요가 있다. 여야가 공감하면서도 제도개선에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내로남불 때문이다. 야당에 청문회는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야당이 공개청문회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다. 여당인 민주당도 할 말이 없다. 야당 때 그랬다. 국민의힘이 만년 야당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치적 이해를 떠나 후진적 청문회 문화는 바꿔야 한다. 투트랙 청문회로 하되 차기 정부에서 시행하자는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제의는 합리적 타협점이 될 수 있다. 망신주기 청문회는 이쯤에서 끝내자.lee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