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힘든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 시간의 소중함

입력 2021-05-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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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전문의

“친구 들어왔니? 친구는 상태가 좀 어떠니? 너랑 어라(나와 같이 사는 다른 친구)는 괜찮니?”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며칠 전 엄마에게 ‘말기암 친구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기 전 잠깐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는 얘기를 전화로 한 터였다. 엄마도 암 진단을 받았으니 마음이 많이 쓰이셨나 보다.

15년을 알고 지낸 그 친구는 2년 전 암 진단을 받았고, 지난 2년 동안 마치 투사처럼 암과 싸워왔다. 가정의학과 의사인 나는 사실 그녀의 암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별 달리 개입할 일이 없었다. 내가 솔직히 항암치료에 대해 뭘 그리 자세히 알겠는가. 처음 증상이 있다고 했을 때 얼른 검진을 받아보라고 얘기한 일, 항암치료 중 부작용이 나타나면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가끔 약을 처방한 일, 항암제로 인해 골수가 억제되어 골수증식제 주사를 처방받아 오면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되도록 내가 일하는 의료협동조합에서 맞을 수 있도록 한 일 정도가 내가 의사로서 그녀의 치료에 그간 개입했던 전부였다. 그랬던 내가 친구에게 얼마 전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았어. 마지막을 준비해야 해”라는 얘기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2년 동안 항암치료를 해왔던 병원에서 갖은 치료에도 암이 줄어들기는커녕 간에 전이가 되고 있으니 이제는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완화의학과로 진료과를 옮기라는 얘기를 들은 그녀였다. 그런데 항암치료를 중단하라는 의사의 얘기에도,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가는 자신의 몸을 느끼면서도 그녀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말하기 힘든 이야기일수록 돌려 말하지 말고 정확히 말해야 하는 법인데, 2년 동안 그녀와 함께 암에 대항하여 싸워왔던 교수님은 이 이야기를 정확하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마치 환자를 포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서? 그 얘기를 전달하면 환자가 더 절망하여 건강이 안 좋아질까 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정확히 얘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힘들어서’인 것 같다. 힘든 이야기는 듣는 것도 힘들지만 하는 것도 힘드니까. 이제 생명이 정말 며칠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의 감정을 감당하는 것은 힘든 일이니까.

나는 우리 집에서 며칠 쉰 후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도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고. 네가 아픈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솔직히 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우리는 부둥켜안고 잠시 울었다.

암 선고나 사망선언을 하는 의료인들에게도 치유의 시간은 필요하다. 내게 그녀와 함께한 5일의 시간이 주어졌던 것과 그 시간 동안 그녀만이 아니라 나까지 위로하려 했던 다른 수많은 친구들이 있어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엄마, 그 전화 참 고마웠어요.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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