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완의 복지플랫폼] 국민연금기금, 책임투자, 그리고 지속가능성

입력 2021-05-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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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전 국민의 노후자금이자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최근 ‘책임투자’ 방향을 본격화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18년 7월에 이미 기관투자자가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투자책임 원칙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2020년 1월에는 수익성, 안정성, 공공성, 유동성, 운용독립성이라는 다섯 가지 기금운용원칙에 ‘지속가능성’을 추가했다. 투자자산의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의 요소를 고려해 신의를 지켜 성실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책임투자를 기본 원칙으로 천명한 셈이다.

지속가능성 투자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다. 사회적 양극화와 기후변화 등의 문제가 심화되는 가운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시장 참여자들의 자유로운 경쟁에 기반하여 단기적으로 대주주의 이익을 추구해 온 주주 자본주의 패러다임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커졌다. 대신 장기적 관점에서 소액주주, 근로자, 지역사회 구성원 전체의 이익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하고, 재무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등 비재무적 이익을 중시해야 기업이 지속가능하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떠올랐다. 투자자가 단기적인 수익만 추구하기보다는 주주로서의 책임성을 가지고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통해 건전하고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를 만들어 기업 가치를 높이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맥락에서, 장기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확대는 바람직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도입한 지 3년이 되어가는 현 시점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나 책임투자 대상과 방법을 둘러싼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업경영에 대한 과도한 간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민연금이 제도를 도입해 놓고도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주주 권리를 침해하는 일들에 제대로 나서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주주권 행사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 3인이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논의방식에 반발하여 회의 중 퇴장하고 사의를 표명하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4월 말에 열린 제5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석탄·발전산업 투자 제한 및 배제 전략이 안건으로 상정되었다가 적용 대상과 범위, 속도 등에 대한 이견으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논의를 연기하기도 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은 책임투자 전반에 걸쳐 원칙은 수립되었으나 체계적인 절차와 세부적인 디테일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미시적이고 과정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비롯된다. 작년에 감사원은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지침을 원칙 없이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책임투자에 대한 이견과 경제적 파급효과에 비해 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인프라가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된다. 국민연금은 올해 3월 한 달 동안에만 600개 정도의 기업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였다. 국민연금의 주주 관여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관여할 기업을 아주 깊게 파악하고, 문제점 지적에 그치지 않고 해결책을 갖고 기업과 대화해야 하는데, 현재 국민연금이 이를 수행할 만한 충분한 인력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서 독립성이 확보되는가도 신뢰와 직결된 중요한 문제다. 지난 1월 여당 대표가 국민연금에 “직원 사망사고를 일으킨 포스코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스튜어드십 코드를 시행해 달라”고 주문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정치권의 언급 자체가 국민연금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해치는 부적절한 정치적 압박으로 비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더욱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단일 투자기금으로서 국민연금기금 규모의 변화다. 국민연금기금은 현재 860.3조 원에 달하는 규모로, 이 중 국내 주식 보유액이 상장사 시가총액의 7.4%를 차지한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국내 기업이 312개, 10% 이상인 기업도 103개에 달한다(2019년 말 기준). 이런 거대 기금은 향후 20여 년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2041년에 1778조 원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이미 연못 속의 고래인 국민연금기금의 덩치가 현재의 두 배로 자란다는 의미다. 아무리 해외투자 비중을 늘린다고 해도, 국민연금이 국내 기업과 경제에 미칠 파급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는 2057년까지 약속된 급여 지출로 모든 기금이 소진될 예정이다. 16년 동안 1778조 원 규모의 모든 투자가 회수되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가 국내 기업과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국민연금은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까.

“국민연금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이고, 적립 규모가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므로 국가경제 및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하여 운용하여야 한다”는 기금운용의 공공성 원칙이 지켜지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국민연금을 다수의 펀드로 나눠 기금 간 경쟁을 유도하고 독립적 조직이 다양한 관점에서 투자하도록 하여 기금 전체의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는 제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때 국민연금기금의 지배구조 재편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연금기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장기적인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장기투자자로서 기업에 대한 지속가능성 투자를 늘리는 것이 중요한 만큼 국민연금 자체의 지속가능성부터 확보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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