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까지 낮출 필요는 없었다.” 2010년 3월 말 퇴임한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가 퇴임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개적으로 했던 말이다. 2008년 9월만 해도 5.25%였던 기준금리를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로 2009년 2월 2.00%까지 떨어뜨린 것을 후회한 것이다.
최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불을 지핀 조기 금리인상론을 보면서 문득 스친 두 가지 생각이다. 그렇잖아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확산)에 따른 경제 충격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크지 않았던 반면, 기준금리 인하를 포함한 경기대응은 당시보다 과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중앙은행 기준금리만 보더라도 지난해 코로나19 발발 후 미 연준(Fed)은 1.50~1.75%에서 0.00~0.25%로, 한은은 1.25%에서 0.50%로 각각 낮췄다. 이 같은 금리인하는 분명 팬데믹 위기 극복에 기여했다. 다만, 문제는 금리인하가 불러온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적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금리를 인하한 만큼 실물경제에 보탬이 됐는지는 의문이다. 돈이 얼마나 잘 도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통화승수를 보면 금리인하 직전인 지난해 2월 15.57배에서 인하 사이클이 끝난 직후인 6월 14.88배로 뚝 떨어졌다. 돈이 돌지 않는 소위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금리인하 효과를 반감시켰다고 보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반면,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이어 비트코인 등 소위 암호화폐까지 자산시장은 폭등했다. 최근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주된 원인 중 하나도 부동산값 급등이고 보면 시민들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여기에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 투자) 열풍에 가계부채도 급증세다. 작년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106.6%를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경제규모를 넘었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에 예금만 맡겨서는 손해라는 인식에다, 대출금리마저 예금은행 기준 평균 3%를 밑돌면서 빚지는 부담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성태 전 총재가 중립금리 수준을 “돈을 빌릴 때 빌릴지 말지를 고민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지금의 금리수준은 보통 완화적인 게 아니다.
그렇잖아도 금리 인하와 인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사그라지고 연준에서 출구(금리인상)를 모색하던 2009년 하반기 한은도 이에 동참할 기미를 보이자 재개를 대표하던 대한상의에서 이를 반대하는 성명서까지 발표했던 일화는 대표적 예다.
반면, 이명박 정부 땐 747정책(연간 7% 성장, 1인당 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일환으로 저금리·고환율 정책을 대놓고 폈다. 박근혜 정부 초기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이한구 원내대표는 금리인하에 반대하던 당시 김중수 총재를 향해 “청개구리”, “나무늘보”라는 원색적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2014년엔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척하면 척”이란 말로 이주열 총재를 향해 금리인하를 압박했다.
지금은 가계부채가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코로나19로 추가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점도, 직전 금리인상이 있었던 2017년 11월과 2018년 11월 두 번의 인상에 시차가 무려 1년이나 걸린 점도 바로 가계부채 때문이었다.
코로나19 전개와 백신 접종 상황이 여전히 미지수다. 허나 올해 4% 경제성장을 넘볼 만큼 경기는 호전되고 있고, 경제심리는 이미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대외적으로도 변이바이러스발 재확산이 오더라도 작년과 같은 셧다운(shutdown·일시폐쇄) 가능성은 낮다. 시장금리도 이미 한두 번의 금리인상을 반영한 수준까지 올랐다.
한두 번의 금리인상은 완화 정도의 조정일 뿐 긴축이 아니다. 버블붕괴 차단과 향후 위기에 대비한 정책여력 확보도 필요하다.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 ‘샤워실의 바보’로 빗대어지는 중앙은행이 이젠 수도꼭지마저 고장냈다는 비판까지 받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