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 4층에 가면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이 소장한 전시를 무료로 볼 수 있다.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 실물을 볼 수 있는 기회다. 고(故)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 가수 에릭 클랩튼도 픽(pick)한 이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진다.
이번에 한국에 최초로 공개된 작품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4900가지 색채의 아홉 번째 버전 Version IX(2007)'이다.
프랑스 명품 재벌이자 컬렉터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 회장이 수집한 작품으로 유럽 밖으로 처음 나왔다. 국내에서는 2006년 이후 15년 만에 열린 리히터의 개인전이다.
4900가지 색채는 정사각형 컬러 패널 196개를 여러 사이즈의 작은 격자판으로 조합한 작업부터 하나의 대형 패널로 완성한 작업까지 11개 버전으로 구성됐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4900개의 색채로 이뤄진 작품들이 시선을 압도한다. 빨강·노랑·파랑·녹색의 4원색을 컴퓨터 프로그램의 무작위 추출로 배열했다.
패널 조립 방식에 따라 11개 버전이 존재한다. 이번 전시는 그중 9번째인 셈이다. 한 조각의 크기는 가로·세로 9.7cm다. 이 조각이 25개로 이뤄진 게 한 패널이다. 패널에 가로·세로 5개씩 총 25개의 색을 조합한 게 196개다. 그렇게 전체 4900가지 색깔이 완성된다.
전시장 중앙엔 436.5cm 규모 대형 작품 두 개가 걸려있다. 양옆에는 각각 242.5cm, 145.5cm 작품이 자리한다.
1960년대 산업용 페인트 색상표에서 착안한 색채 구성은 2007년 독일 쾰른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디자인 '돔펜스터'로 완성된다. 중세 시대 창문에 쓰인 74개의 다채로운 색채를 1만1500장의 유리 조각으로 복원해낸 것이다.
색이 이뤄내는 완벽한 조화로움과 정확성은 리히터의 색상에 대한 고찰의 핵심이다.
올해로 89세인 리히터는 살아있는 신화로 불린다. 가수 에릭 클랩튼이 그의 팬이자 컬렉터다. 그가 소장한 리히터의 1994년 작 '추상화(Abstraktes Bild) 809-4'이 2012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 출품됐는데, 3400만 달러(한화 380억 원)에 팔렸다. 당시 작가 최고가 기록이었다.
다음 해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추상적 풍경화 '대성당 광장, 밀라노'는 약 3700만 달러(414억 원)에 낙찰돼 전 세계 생존작가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2015년에는 런던 소더비에서 1986년 제작된 '추상화(Abstraktes Bild) 599'가 4630만 달러(518억 원)에 거래되며 자신의 최고가 기록을 또다시 갈아 치웠다.
리히터는 2017년과 2018년 글로벌 아트마켓에서 연간 거래 총액 1위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제프 쿤스의 은색 금속 조각 '토끼'(약 1085억 원)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약 1020억 원)에 이어 생존작가 중 3번째로 높은 경매 낙찰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건희 전 회장도 리히터의 대형 색채 추상화를 자택에 걸어놓을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수집한 작품 중에는 리히터의 '두 개의 촛불'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7월 18일까지 무료로 전시를 볼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그리고 원활한 작품 감상을 위해 전시 관람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