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에게는 젠더, 성정체성, 인종, 다문화 문제가, 회사에서는 갑질, 따돌림, 집단주의로 인한 개인주의 훼손, 분배 불공정이, 가정으로 오면 가사노동 분담, 자녀의 학교폭력 등이 개인의 권한 침해 문제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공권력이나, 가해 당사자와 합리적 대화, 노동조합 같은 단체에서 알아서 잘 해결해 주면 금상첨화이지만 일이 꼭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결국 나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이때 고민과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영화 작법에서도 주인공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이 고난을 받고 무시당하고 있어, 누가 보아도 어쩔 수 없이 행동으로 나서게 되고 누군가의 조력을 받아 악당을 물리쳐 해결하는 플롯 구조가 대부분 관객으로부터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이런 이야기 구조가 우리의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 활동했던 철학자 김재권은 영화 작법처럼 행위자(주인공)의 행동이 적절하려면 설명자(관객)의 판단과 일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행위자의 행동이 행동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도덕적으로나 문화적 규범이 일치하지 않아 비난 받는 일은 부지기수이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자 토머스 리드는 행위, 행동 또는 우리 신체에 어떠한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움직임을 위해서는 의욕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욕이라는 감정 상태를 특정한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으나, 분노와 같은 감정은 개인이 나설 행위의 이유이자 원인이 되는 의욕 중 하나이다.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개인이 모욕을 느낄 만큼 무시당했을 때 자신의 속성 자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상실된 자기 존중을 찾고자 하는 도덕적 동기의 원인이라 말한다. 영화 제목처럼 ‘분노는 나의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나서는 행위가 마냥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도의 아마르티아 센은 자신의 자유와 권한을 방해하는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나서는 행위자유(agency freedom)와 개인이 얻을 수 있는 혜택, 즉 후생자유(welfare freedom)는 역(逆)의 관계가 있다고 한다. 무언가를 고치고 수정하고자 나서는 행동이 꼭 개인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부 대학생들의 등록금 반환을 위한 삼보일배나, 70대 여성 노인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일은 단순히 나서서 행동하는 것이 꼭 경제적 이유 및 후생수준 향상과 연관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 조합원은 인터뷰에서 “서로 억울한 일 있으면 이렇게 소리 낼 수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나서서 행동해야 할 이유로 충분하다.
성전환자는 당장의 일자리보다 사회적으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어 대중들 앞에 나서서 행동한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부모가 자신의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학교와 법정에서 싸우고자 한 이유는 자녀에게 삶에 대한 자신감과 미래를 선사하고자 함이다. 사회와 개인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법과 제도와 규범의 변화는 더디게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변화 속도의 간극은 개인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지게 만들 수 있다.
어떤 일에 나서서 행동하는 것은 작지 않은 용기와 미움 받을 각오가 있어야 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다수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포용할 수 있게 만든다. 무엇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행위를 통해 자기를 기쁘게 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하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