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이 어렵게 첫 만남을 가졌지만, 각자의 입장만을 반복했다. 일각에서는 그간 사실상 중단된 한일 간 고위급 소통이 재개됐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사실상 바이든 행정부를 의식한 만남이었다는 것에 불과하는 분석도 나온다.
정 장관과 모테기 외무상은 5일(현지시간) 런던 시내 한 호텔에서 마주 앉았다. 두 장관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을 먼저 한 뒤 일본 측이 준비해 놓은 다른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20분간 대화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북핵 문제는 물론 갈등 현안인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및 위안부 배상 판결,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정 장관은 회담 후 “좋은 대화를 했다”며 “어젯밤에도 모테기 외무상과 오래 얘기했다”고 소개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가 진행됐다”며 “정 장관은 앞으로 다양한 현안에 관해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말했고, 모테기 외무상도 완전히 공감하면서 의사소통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본 외무성도 보도자료에서 “앞으로 일·한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당국자 간 의사소통을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미일 회담을 마친 뒤 위층으로 이동해서 인사하고 사진 찍고 자리를 잡은 뒤 통역까지 거쳐 단 20분만 대화했다는 점을 감안하며 양측이 각자 입장을 설명하는 데 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양국간 최대 현안인 위안부 피해자 판결과 오염수 방출을 놓고는 각자의 입장차만 확인했다. 외교부 설명과 일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모테기 외무상은 강제징용 및 위안부 판결 문제에 대한 일본의 기존 입장을 설명했다.
배상 책임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으로 모두 해결된 만큼 한국 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며 이에 대한 해법을 한국 정부가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모테기 외무상은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자산의 현금화는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입장도 강조했다. 이에 정 장관은 일본 측의 올바른 역사 인식 없이는 과거사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위안부 및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또 정 장관은 원전 오염수 방류가 한국 등 주변국 안전과 환경에 위협을 미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전달했지만, 모테기 외무상은 한국 정부의 이 같은 비판을 우려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도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외교부는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한반도 문제 관련 3국 간 협력 방안 및 역내 정세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공조를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