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제주 느와르 ‘낙원의 밤’

입력 2021-04-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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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느와르(noir)는 검은색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영화에서는 음울하고 비정한 첩보나 액션물을 지칭할 때 쓴다. 우리한테는 주윤발, 장국영이 등장했던 ‘홍콩느와르’라는 변종으로 익숙하다. 최근엔 한국형 K-느와르가 인기를 끌던 차에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이 제주를 배경으로 정통 느와르 ‘낙원의 밤’을 넷플릭스에서 선보였다.

제주도의 푸른빛 바다는 조폭들의 사시미 칼과 총기가 어지럽게 난무하더니 어느새 핏빛으로 물들여진다. 아름다운 제주의 팬션은 불법 무기를 거래하는 은밀한 장소가 되는가 하면, 횟집에선 조폭들의 시체가 나뒹군다. 여기에 어차피 죽을 남자의 처연함과 시한부 인생 여자의 애절함이 겹쳐진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 촬영이 어려워져 대안으로 택한 청정 제주도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신선했다.

영화의 전반까진 뻔한 ‘깡패 영화’의 서사와 클리셰가 엿보여 일찍 실망할 수 있지만 엄청나게 뿜어내는 캐릭터의 힘이 영화의 뒤를 받쳐준다. ‘택시운전사’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줬던 엄태구, 비열한 연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호산, 빌런(악당)의 전형적인 모습에 본인만의 개성을 얹어 독보적인 매력을 보여준 차승원, 그리고 대배우의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엿보이는 전여빈의 무념무상한 킬러 연기는 다른 느와르 영화와 차별화를 해낸다.

태구(엄태구)는 어쩌면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을 연상케 하지만 복수의 방법은 달랐다. 자칫 냉혈한처럼 보이지만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화해하고자 손을 내민다. 물론 세상은 그를 거칠게 밀어내긴 하지만. 재연(전여빈)의 캐릭터는 한국영화에서 달라진 여성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민폐녀’에서 ‘클로저’로의 변신이다. 아마도 충격적인 엔딩신은 코로나 스트레스로 지친 관객들과 이런저런 일로 삶이 피곤한 한국의 젊은 여성 관객들 모두에게 자극적인 쾌감을 선사해 주지 않을까? 악에 대한 철저한 무관용의 원칙을 영상에서나마 보여준다.

관객들은 가슴 졸이며 막다른 길에 다다른 두 남녀의 해피엔딩을 내심 기대했을 것이다. 그것이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이며 영화가 흥행으로 가는 왕도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낙원의 밤’은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벤(니콜라스 케이지)과 세라(엘리자베스 슈)의 마지막 모습을 닮았다.

누군가는 제주 홍보 영화 같다고 혹평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태구와 재연이 물회와 한라산 소주를 먹고 마시던 그 술집에 가고 싶어진다면 그것대로 의미 있지 않을까?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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