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는 당시 이런 주장을 일축했으며, 이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아직도 전혀 활동이 포착되지 않는 사토시 나카모토보다 머스크가 이제 비트코인과 가상화폐 시장에서 훨씬 영향력이 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머스크는 단지 트위터 한 단어만으로 비트코인 가격을 끌어올렸고, 이제는 비트코인을 넘어 장난으로 시작됐던 도지코인 가격마저 폭등시켰다. 한마디로 머스크가 없었다면 올해 가상화폐 투자 열기는 지금보다 훨씬 미지근했을 것이다.
머스크는 3월 자신의 직함을 ‘테크노킹’으로 바꿨으며 최고재무책임자(CFO)에는 ‘마스터 오브 코인’이라는 직함을 부여했다. 머스크 때문에 널뛰기하는 가상화폐 시장을 보면 그가 진정한 ‘마스터 오브 코인’이라 할 수 있겠다.
머스크는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주장을 부인했던 4년 전에는 “친구로부터 받은 비트코인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등 가상화폐에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머스크가 올해 갑자기 가상화폐 전도사로 나선 것에 대해 보유자산 다각화나 노이즈 마케팅, 혁신가로서의 이미지 관리 등 여러 이유가 제기됐다. 더 나아가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머스크가 가상화폐 열기에 편승해 세간의 관심을 더 끌려 했을 수 있다. 일본 시바견을 바탕으로 한 밈(Meme·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에서 시작된 도지코인을 생뚱맞게 띄우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머스크가 진정한 혁신가를 자처한다면 ‘관심병’을 버리고 가상화폐를 갖고 노는 짓을 그만둬야 한다. 머스크는 전기차와 태양광 등 친환경 사업으로 세계 1, 2위를 다투는 부자가 됐다. 또 기후변화 등으로 지구가 멸망할 것에 대비해 화성으로 인류를 이주시키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러면서 가상화폐가 지구 환경에 엄청난 패악을 끼치는 것을 보면서도 여기에 열광하다니 참으로 웃길 노릇이다. 가상화폐 채굴에 막대한 전력이 소비된다. 비트코인 하나만 하더라도 채굴에 들어가는 전력이 네덜란드와 맞먹는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중국은 전체 에너지믹스(Energy Mix)의 약 60%를 화력발전이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채굴에 필요한 그래픽카드 수요가 폭발하면서 전 세계 컴퓨터 가격도 오르고 있다. 그만큼 저렴한 컴퓨터가 절실히 필요한 개발도상국 학생과 젊은이들도 피해를 보게 됐다.
머스크는 이런 부작용을 알면서도 가상화폐의 혁신적인 측면 때문에 전도사로 나섰을 수 있다. 이에 머스크에게 제안한다. 바로 친환경 가상화폐를 직접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비트코인을 통한 글로벌 금융시스템 혁신을 꿈꾼다면 여기에 환경보호까지 얹어보면 어떨까.
이미 친환경 가상화폐에 대한 아이디어는 여러 개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최대 가상화폐 채굴업체 파운드리의 마이크 코일러 CEO는 “비트코인이 재생에너지 활성화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재생에너지는 간헐적으로 전력을 과잉생산하는 것이 문제인데 채굴장을 옆에 둬서 남아도는 전력을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상화폐 솔라코인은 태양광 발전으로 1메가와트시(MWh)의 전력을 생산할 때마다 1개의 솔라코인을 생산한다. 그 밖에도 하드디스크 중 사용하지 않는 부분을 채굴에 사용하는 등 가상화폐 업계는 환경 파괴자라는 논란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다.
문제는 시장이 아직 이런 노력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코인마스터’인 머스크가 나선다면 일거에 달라질 수 있다. 머스크가 아예 채굴에서 유통에 이르기까지 친환경적인 가상화폐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기후변화 시대에 걸맞은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다. 이것이 “도지가 달을 향해 짖는다”라는 트윗으로 도지코인 가격을 폭등시키는 것보다 훨씬 자신과 인류에 도움이 되는 일 아닐까. baejh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