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비번 알면 대신 투표”
일각선 “IPO 위한 조합 장악 시도”
교보생명 우리사주조합이 4개월 전 선출한 대의원과 임원을 다시 뽑아야 한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우리사주조합의 대의원 선거가 비밀ㆍ무기명 투표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하면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교보생명 우리사주조합이 지난해 12월 30일에 시행된 대의원 선거에 대해 비밀ㆍ무기명 투표 원칙에 위반이라며 선거를 다시 하라고 지시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이번 선거가 근로복지기본법 제35조 제5항(우리사주조합의 대표자 등 임원과 대의원은 우리사주조합원의 직접ㆍ비밀ㆍ무기명 투표로 선출한다)을 위반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노동청은 우리사주조합에 대의원 선거를 재실시하고 다음 달 7일까지 시정 결과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노동청은 대의원 선거가 직접 투표가 아닌 전자 투표로 진행된 점을 문제 삼았다. 선거에 사용된 시스템의 보안 등 오류를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사주조합 대의원 선거는 사측의 도움으로 업무 사이트인 ’이지모아 시스템‘을 통해 진행돼 왔다. 이지모아에서 대의원 투표를 한 후 이지모아 패스워드를 입력하면 투표가 완료되는 방식이다.
우리사주조합은 전자 투표가 무기명ㆍ비밀 투표 원칙을 준수하도록 설계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1인당 1회의 투표만 가능하게 했고 투표자 소속 지역에만 투표할 수 있도록 전자 투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다른 사람이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알면 그 사람 대신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통상 업무용 PC는 자료 백업 기능 때문에 화면 기록이 저장돼, 이 PC로 투표할 경우 비밀 투표가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 상황을 두고 신창재 회장이 기업공개( IPO)를 위해 우리사주조합을 우호적인 성향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무산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IPO 과정에서 우리사주조합이 지니는 중요성 크다. 조합원인 해당 회사 임직원들이 자사주를 외면하는 모습이 외부로 비치면 해당 주식의 매력도가 떨어져 사실상 IPO는 어려운 이유에서다. 이 반대여야 IPO가 수월하다는 뜻이다. 특히 교보생명의 IPO는 지분 33.78%를 보유한 신 회장에게 호재다. 재무적 투자자 어피니티컨소시엄과 수조 원대의 법정 공방을 하는 신 회장에겐 자금줄이 될 수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우리사주조합과 IPO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우리사주조합 대의원 선거를) 직접 투표 한 번 하는데 수억 원씩 든다”며 “회사가 선거를 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마련해준 것뿐”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