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는 단순한 정부조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이어 문재인 정부가 최대 치적으로 내세운 검찰개혁의 상징이다.
이런 공수처가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초대 김진욱 공수처장의 오판과 말실수로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안으로는 검사 임명 정원 미달로 체면을 구겼고 1호 사건을 두고 수뇌부의 이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밖으로는 사건 이첩 기준을 놓고 검찰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공수처 출범 초기 김 처장의 ‘협조’와 ‘협력’은 찾아볼 수 없다.
공수처는 출범 이전까지 수십 년간 부침을 겪었다.
공수처는 1997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처음 내놓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2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다시 등장했지만 줄곧 야권과 검찰의 반발로 무산됐다.
문 정부 들어 공수처 설립에 속도가 붙었다. 2019년 4월 공수처 근거법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이 패스트트랙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이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지연시키는 무제한 토론)로 맞섰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거대 여당의 힘을 발휘해 2019년 12월 30일 공수처법을 통과시켰다.
이번엔 공수처장 인선이 문제였다. 애초 공수처장 후보 추천은 추천위원회 위원 7명 중 6명의 찬성이 있어야 가능했다.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는 당연직 3명에 국회 교섭단체가 4명을 추천해 구성된다.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2명씩 추천위원을 선정했다. 만약 국민의힘 측이 반대하면 의결 정족수 6명에 미치지 못해 후보 추천은 공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공수처법이 통과된 후 1년이 넘도록 공수처장을 임명하지 못한 원인이었다.
결국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10일 공수처장 후보 추천 의결 정족수를 3분의 2(5명)로 완화해 야당의 거부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했다. 남은 절차는 속전속결로 이뤄져 한 달여 뒤인 1월 말 김 처장이 임명됐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공수처였지만 앞으로의 기대는 컸다.
공수처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의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다. 1948년 검찰청법 제정 이후 72년간 기소권을 독점해온 검찰을 견제하고, 형사사법체계의 공신력을 높일 대안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과 관련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관용차 제공 등 특혜 조사 의혹은 상당한 충격을 줬다.
진위를 떠나 공정성을 최고의 가치로 내걸어야 할 공수처가 1호 사건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치명상을 입었다.
이 와중에 공수처는 기소권을 강제하기 위한 이른바 ‘유보부 사건 이첩’ 법제화를 고려 중이라고 한다.
‘유보부 이첩’은 기소권 행사를 유보하는 조건으로 사건을 검찰(경찰)에 넘기는 것인데, 지난달 공수처가 김 전 차관 사건을 수원지검에 재이첩하면서 “공소 여부 판단은 우리가 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공수처는 사건사무규칙을 개정해 ‘유보부 이첩’을 명문화하려 했지만 검찰이 반발하자 이보다 효율적인 공수처법 개정을 통해 구속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공수처가 고위 공직자 범죄의 기소권을 오롯이 가지려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왜 공정성 시비가 불거진 지금이냐는 것이다.
기소권을 독점했던 검찰의 진짜 힘은 ‘기소하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공수처의 저의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검찰과의 첫 단추도 잘못 끼웠다. 태생부터 어지러웠던 공수처의 앞날이 갈등으로 점철될 수 있다. 상호 협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도 국민 눈에는 밥그릇 싸움으로 비친다.
검찰개혁에 동참할 뜻이 있다면 검찰도 날을 세우기보다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손바닥도 맞아야 소리가 난다.
우리 사회에서 이념·진영 간 논리는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은 ‘공정’이다. 공수처가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