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배터리 소송을 이어온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전격 합의했다.
합의금은 LG측이 요구했던 3조 원과 SK가 주장했던 1조 원 사이에서 절충점(2조 원)을 찾았다. 양측이 2년 동안 소비한 로펌 고용 및 소송 비용을 합하면 1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양측 모두 소송에 따른 피로도가 커진 것은 물론, 소송 진행 중에도 글로벌 배터리 기업의 경쟁은 더 심화했다. "더는 발목 잡힐 수 없다"는 절박함이 양사의 합의를 부추긴 셈이다.
11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국제무역위원회(ITC) 거부권 행사 시한을 하루 앞두고 극적으로 합의했다.
양사는 이날 오후 공동 합의문을 발표하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ITC에서 진행되고 있는 배터리 분쟁을 모두 종식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합의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에 현재 가치 기준 총액 2조 원(현금 1조 원+로열티 1조 원)을 합의한 방법에 따라 지급한다"라며 "관련한 국내ㆍ외 소송을 모두 취하하고 향후 10년간 추가 소송도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공동 입장을 밝혔다.
두 CEO는 "한미 양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발전을 위해 건전한 경쟁과 우호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며 "특히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공급망 강화 및 이를 통한 친환경 정책에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측이 절충한 합의금은 2조 원이다. 역대 배터리 업계에서 최대 규모다. 나아가 글로벌 기업의 영업비밀 사건의 합의금 역사 가운데 최대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LG 측은 3조 원을 요구했고 SK 측은 1조 원 수준을 주장하며 맞선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추가 입장문에서 "소송 과정에서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신 당사 주주, 고객, 임직원 등 모든 이해관계자께 합의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합의는 공정경쟁과 상생을 지키려는 당사의 의지가 반영됐으며, 배터리 관련 지식재산권이 인정받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지루한 소송전 탓에 빠르게 성장하는 유럽 전기차 시장을 놓칠 수 있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LG 측은 "이번 합의를 통해 폭스바겐과 포드를 포함한 주요 고객사들이 세계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배터리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앞으로도 전 세계적인 친환경 정책에 발맞춰 글로벌 선도기업으로서 과감하고 선제 투자를 통해 대규모 배터리 공급 확대 및 전기차 확산이 성공적으로 실행되도록 적극적인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며 "이번 합의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개화기에 들어간 배터리 분야에서 우리나라 배터리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계기가 되는 한편, 양사가 선의의 경쟁자이자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생태계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도 추가 입장 문을 냈다. 로열티를 포함해 2조 원을 내야 하는 만큼, 자세한 입장을 밝혔다.
SK 측은 "장기간 지속한 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해 준 한미 행정부와 이해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준 조지아주 주민들과 브라이언 캠프 주지사, 주정부 관계자, 조지아주 상/하원, 잭슨 카운티, 커머스시에도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분쟁과 관련,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친환경 정책, 조지아 경제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며 "무엇보다도 2022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을 앞둔 포드 및 폭스바겐 등 고객사들의 변함 없는 믿음과 지지에 적극적으로 부응해 앞으로 더 큰 파트너십으로 발전해 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된 점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합의로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배터리사업 운영 및 확대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 됐으므로 미국 조지아주 1공장의 안정적 가동 및 2공장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글로벌 전기차 산업 발전과 생태계 조성을 위한 국내외 추가 투자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며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 강화와 사업가치/기업가치 제고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했다.
양측의 합의금이 애초 서로가 주장하던 금액의 중간에서 절충안을 찾은 만큼, "양사 모두 윈윈한 것"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합의의 최대 승자를 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라는 분석마저 내놓고 있다.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해 미국 대통령이 ITC 결정을 뒤집은 사례가 없다. 때문에 거부권 행사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무엇보다 바이든 스스로 지식재산권 침해를 강하게 비판해왔던 만큼, 이번 합의가 바이든의 커다란 고민을 덜어준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