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움직임 더뎌…기업 불러 머리 맞댔지만, 원론적 논의만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와 미·중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과열되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도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다.
우리 정부는 민간기업들을 소집하며 대응에 나섰지만, 변죽만 울릴 뿐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은 주요 반도체·완성차 기업들과 최근 반도체 부족 사태에 대한 긴급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TSMC, 삼성전자, HP, 인텔, 마이크론, 포드, GM 등 19개 반도체·자동차 분야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반도체를 안보적 시각으로 보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 올려 보인 뒤 “반도체 칩과 이 웨이퍼, 배터리와 광대역 등 모든 것이 인프라다. 우리는 어제의 인프라를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바이든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온 중국에 대한 견제 심리를 드러내면서, 반도체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조했다.
‘반도체 굴기’를 꿈꿔온 중국 정부의 투자 압박도 여전하다. 앞서 3일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열린 한ㆍ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중국은 우리 정부에 반도체와 5세대(5G) 이동통신 등에 대한 협력을 요구했다.
지난해 한국의 반도체 전체 수출량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까지 더해진다면 수출 비중은 60%까지 올라간다.
업계는 미국과 중국이 이번 반도체 공급난 사태를 계기로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각을 세울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수요처인 양국을 주요시장으로 하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움직임은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정부의 고도 외교전략이 필요하지만, 기업에 맡겨놓고 사실상 손 놓은 형국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선 바이든이 반도체 공급 문제에 직접 나서는 등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의 체감도는 떨어지는 것 같다”라며 “최근의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도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 없이 완성차·반도체 기업을 모아놓고 ‘한번 알아서 해봐라’라고 액션만 취하는 모양새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