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낸데 이어 북한에서 연일 남한과 미국을 향한 거친 발언이 나오는 등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일각에서는 남북관계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인 2017년의 대결국면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2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과 일정한 형태의 외교에 준비돼있다고 했는데 여기에 김 위원장과 만나는 것이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사키 대변인은 "바이든의 접근방식은 상당히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리고 그것은 그의 의도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의 직접 만나 협상하는 이른바 '톱다운' 방식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달리 비핵화 등 바이든 대통령이 원하는 조건을 실무자 선에서 우선 조율하는 '바텀 업' 방식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25일 취임 후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언급하며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킬 경우 상응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다만 북한과의 외교적 해법도 염두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나는 또한 일정한 형태의 외교에 대한 준비가 돼 있다"며 "그러나 이는 비핵화라는 최종 결과 위에 조건한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김 위원장의 만남은 비핵화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그리고 북핵 관련 협상은 외교관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바이든 대통령의 관심을 끌만한 조건을 북한쪽에서 먼저 제시하지 않는 이상 북미 대화는 재개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하지만 북한은 연일 남한과 미국을 향한 비난 수위를 높이며 강경한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30일 담화를 발표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발언을 거칠게 비난하고 나섰다.
김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문 대통령이 26일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한 연설과 앞서 작년 7월 23일 국방과학연구소 방문 발언을 비교하며 "북과 남의 같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진행한 탄도미사일 시험을 놓고 저들이 한 것은 조선반도(한반도) 평화와 대화를 위한 것이고 우리가 한 것은 남녘 동포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대화 분위기에 어려움을 주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니 그 철면피함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부부장은 이어 "이처럼 비논리적이고 후안무치한 행태는 우리의 자위권을 유엔 '결의' 위반이니,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이니 하고 걸고 드는 미국의 강도적인 주장을 덜함도 더함도 없이 신통하게 빼닮은 꼴"이라며 "자가당착이라고 해야 할까, 자승자박이라고 해야 할까"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을 “미국산 앵무새라고 ‘칭찬’해줘도 노엽지 않을 것”이라고 힐난했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임기 말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와는 더이상 관계 개선에 나설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김 부부장이 문 대통령을 거칠게 비난한 데 대해 유감을 표하고 "북한도 대화 의지를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의 포괄적 대북정책 수립 과정이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북한이 태도를 바꾸기 보다는 오히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추가 도발에 나설 가능성 높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 이른바 '태양절'을 맞아 모종의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입장에서는 경제난 등에 따른 주민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릴 수 있는 내부 결속의 기회이기도 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주 후반 워싱턴DC에서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를 열고 대북정책 등에 관한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반도 정세가 향후 2~3주 동안 중도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