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있는 그대로 보는 것도 지혜다

입력 2021-03-2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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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부국장 겸 산업부장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경제 상황과 관련해 최근 머릿속을 맴도는 강의와 연설이 있다. 경제민주화를 주창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특강과 노동당에 맞섰던 윈스턴 처질 전 영국 수상 연설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2014년 9월 서강대학교 특강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며 ‘한국민의 역동성’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민의 역동성이 경제 활력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동시에 그는 ‘역동성’의 위험성을 내다봤다.

“일본 젊은이들은 잃어버린 20년을 수동적으로 참고 지나며 희망을 접었다. 하지만 한국 청년들은 20년이 아니라 10년, 5년도 참지 않을 거다. 거리에 나와 실정의 책임을 묻고 아우성칠 수 있다. 그것 또한 한국민의 역동성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 지난해 40만 명을 넘어섰다. 전년 대비 24% 급증한 것이자 역대 최고 수준이다. 니트족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군도 역대 최대치다.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2월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취업준비자는 85만3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8만3000명(10.8%) 증가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2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다. 취업준비자 가운데 20∼30대 청년 취준생은 약 76만 명으로 전체의 89%를 차지했다. 고용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취업에 장기간 실패한다면 이들도 니트족으로 넘어갈 수 있다.

물론 김 위원장도 어느 수준에서 우리 청년들이 폭발할지를 점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서울과 부산의 보선에서 20대의 표심이 움직이는 걸 보면 그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윈스턴 처질 전 영국 수상은 1908년 극심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이분법적 경제 갈등 상황에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명연설을 남겼다.

“사회주의는 부유한 자를 끌어내리려 하지만, 자유주의는 가난한 자를 끌어올리려 한다. 사회주의는 기업을 죽이려 하지만, 자유주의는 특권과 편애의 질곡으로부터 기업을 구해내려 한다. 사회주의는 자본을 공격하지만, 자유주의는 독점을 공격한다. 사회주의는 개인의 이익을 파괴하려 하지만, 자유주의는 개인의 이익을 공적인 권한과 조화시킴으로써 오히려 보호하는 효과를 꾀한다.”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보면 현재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경제정책이 어디에 기반을 두고 추진되고 있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우리는 김 위원장이 기회이자 위험요소로 제시한 ‘한국민의 역동성’, 그리고 처칠 전 수상이 갈파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시금석을 ‘건강한 두려움’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관건은 경제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다.

일본 무역수지는 1990년 360억 달러에서 2011년 1940억 달러로 다섯 배 이상 증가했다. 도쿄에는 1991년부터 2006년까지 150m 넘는 마천루가 93개나 치솟았고 2006년부터 2017년 사이에 추가로 고층건물 121개가 건설됐다. 반면 일본이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14.3%에서 2008년 8.9%로 감소했다. 1인당 GDP 순위도 2000년 3위에서 2008년 23위로 미끄러졌다. 특히 포천이 꼽는 총매출 기준 세계 500대 기업 중 일본 기업 비중은 1995년 35%에서 2009년 13%로 거의 3분의 1 토막이 났다.

무엇을 보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고, 잃어버린 20년을 반면교사 삼아 다시 한번 경제활력을 되찾을 수도 있다. 영롱한 새벽이슬을 보며 누구는 눈물을 떠올리고, 다른 누군가는 보석을 그린다. 하지만 지금은 이슬을 그냥 이슬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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