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세계 최대 ‘큰손’이라는 영향력을 이용해 ‘갑질’을 하고 있다. 자국의 비위를 건드린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무차별적 경제보복에 나서고 있다. 민족주의로 포장된 중국의 자국 중심주의가 글로벌 공급망을 위협한다는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고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진단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인권탄압을 이유로 제재에 나서자 중국은 경제보복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권 탄압 문제를 지적한 글로벌 기업들을 겨냥, 중국인들이 대대적인 보이콧에 나서고 있다.
세계 최대 의류 소매업체 중 하나인 스웨덴 H&M은 중국에서 퇴출되기 일보 직전이다. 미국 나이키 제품은 불매 운동을 넘어 ‘화형대’에 오르고 있다. 무지, 유니클로 등 일본 브랜드도 중국 누리꾼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됐다. 이들 기업이 인권 탄압 문제를 거론하며 신장에서 생산한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게 발단이다.
이렇게 무역질서를 무시한 중국의 경제보복이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고 있다는 경고가 고개를 들고 있다. 무역 갈등에서 시작된 주요 2개국(G2, 미국·중국)의 분쟁은 더 광범위한 지정학적 대결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자국에 싫은 소리를 하는 기업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무관용 정책이 ‘테일 리스크(tail risk)’로 떠올랐다고 WSJ는 지적했다. 테일 리스크는 발생 가능성이 작고 예측이 어렵지만, 현실화되면 엄청난 충격을 주는 위험 요인을 일컫는다.
위기 조짐은 이미 시작됐다. 2022년까지 비준을 받는 일정으로 추진되던 중국-유럽연합(EU) 간 투자협정이 파탄 직전에 내몰렸다. 미국과 동맹국들의 대중국 무역과 금융 제재 후폭풍도 거셀 전망이다.
민족주의에 고취된 중국이 대만을 위협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혼란이 심화할 것이라는 불안도 고조되고 있다. WSJ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지 않더라도 봉쇄 전략을 펼치면 대만이 그에 대한 보복으로 대중국 반도체 수출을 금지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만은 중국 전체 반도체 공급의 3분의 1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중국은 희토류를 무기화할 것이라는 의혹을 계속 받고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1월 총량제를 포함한 희토류 관리조례 초안을 발표했다. 자연자원부는 최근 “인공위성과 드론 등을 동원해 희토류 불법 채굴을 엄격하게 단속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각종 첨단 전자제품과 무기에 들어가는 희토류 공급을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하게 내비치는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최근 글로벌 반도체 공급 대란은 공급망 다각화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여기에 더 거세지는 중국의 신(新) 민족주의가 다국적 기업의 경영 환경에 새로운 악재로 떠올랐다. 이에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과 동아시아가 안정적 환경을 제공한다는 기존 가정을 재검토하고 비상 계획 마련에 돌입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