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내부에선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공동운명체인 합의부 3인이 매일 한 몸처럼 붙어 다닌다는 것도 옛말이 됐다. 대표적으로 고참 판사의 권위적인 모습이 투영된 ‘밥조(組) 문화’가 사라졌다. 밥조 문화는 외부인과의 접촉이 조심스러운 판사들이 조를 구성해 식사를 함께하는 관례에서 비롯됐다.
재경지법에 근무하는 22년 차 A 부장판사는 25일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삼각편대(재판장이 가운데, 배석판사 2명이 좌우에 있는 모양)를 이루며 법조 타운을 걷는 모습을 본 지도 오래됐다”며 “지금은 배석들과 일주일에 한 번 같이 식사를 하면 많이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등법원의 30년 차 B 부장판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재판연구원(로클럭)들은 판사 임용에 영향력이 있는 고법 부장판사와 휴일 빼고 매일 함께 식사하러 다녔다”며 “그런데 최근 재판연구원들이 ‘식사 독립’을 선언할 정도로 법원이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을 떠받치는 힘’이라고 불리던 합의부는 어느덧 기피 부서가 됐다. 과거 도제식 교육이 기본인 법원에서 실력 좋은 부장판사에게 배우고 싶은 젊은 판사들의 지망 1순위가 합의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부장과 배석 모두 단독을 희망하고 있다.
얼마 전 퇴임한 C 부장판사는 “전에는 합의부장과 단독 부장을 고르라고 하면 100명이면 100명이 다 합의부로 가고 싶다고 했는데 이제는 반도 안 된다”며 “부장이 배석을 모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합의부로 가는 것은 스트레스를 가중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송년회는 ‘배석 판사님 모시는 부장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유행이 될 정도로 부장이 배석을 더 어려워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벙커(함께 일하기 싫은 악덕 부장판사를 뜻하는 법조계 은어) 목록이 돌았다면 이제는 벙키(소통 안되고 무능한 배석판사) 명단이 돈다”고 덧붙였다.
젊은 판사들이 증가하면서 급속도로 사회 변화에 순응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지난해 법원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법원 내부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현직 판사나 교수, 변호사 등 법조인 위주로 강연자를 초청했던 과거와 달리 일반 시민 활동가로부터 강의를 들었다.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에 맞춰 법원도 예전보다 훨씬 유연하고 수평적인 관계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