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법전을 들고 분신자살을 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울부짖던, 그의 마지막 외침이 귓가에 맴돈다.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그였다.
1966년 전태일이 통일사에 미싱사로 취직할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하루 기본 15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고작 이틀 밤새웠으면서'라는 표현도 극 중 등장한다. 실제로 밤새 야간작업도 심심치 않게 이뤄졌다고 한다.
작업공간은 한 층을 반으로 쪼개 높이가 1.5m도 되지 않았다. 당시 노동자들은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햇볕도 들지 않은 곳에서 노동착취를 당했다.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온갖 질병에 시달렸지만, 노동자들은 아픔을 내색할 수도 없었다. 해고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받은 일당은 하루 50원. 그 시절 소년, 소녀, 청년들의 노동 값은 커피 한 잔 값도 되지 않았다. 한 달 꼬박 일한 돈은 교통비 그리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보내졌다.
'내일이 되면 행복해질 거야. 내일이 되면 우린 부자 될 거야. 내일이 되면. 내일이 되면'. 왜 빈한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지 태일은 늘 의문을 품었다. 누군가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모든 상황을 본 태일은 정직한 재단사가 되어 연약한 직공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재단 보조로 취직하고 재단사가 된다.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격랑 속을 힘겹게 항해한다.
음악극 '태일'은 '사회적 현실'과 '빈부의 법칙' 속에서 고군분투하다 아스라이 저버린 이 땅의 태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열사', '노동운동가',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태일 앞에 서 있지만, '태일'이 그린 태일은 가난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평범한 청년에 가깝다.
당시에도 근로기준법 법전이 존재했다. 하지만 법은 법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노동자 태일은 직접 근로기준법 법전을 늘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근로감독관을 찾아 잘못된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바뀌는 건 없었다. '환풍기 하나라도 먼저 설치해달라'는 그의 소박한 바람마저 공중으로 흩어진다. 코끝이 찡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웃음기 가득했던 태일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울 때 관객석은 훌쩍거림으로 가득해진다. 태일의 손에 쥐어진 한 권의 근로기준법 법전과 스스로 빛이 되길 선택한 태일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가 바란 건 좌절이나 절망이 아닌 보다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먹먹하다.
음악극 '태일'의 또 다른 묘미는 배우들이 극 중 인물과 실제 자기 자신을 오간다는 것이다. 중간중간 극 중 캐릭터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이야기, 생각을 관객에게 말한다. 특히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원동력이라는 키워드가 주제로 나오기도 한다. 배우들이 생각하는 태일도 엿볼 수 있다.
태일 역은 진선규·박정원·강기둥·이봉준, 태일 외 목소리 역은 정운선·한보라·김국희·백은혜가 맡았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 다음날인 2일까지 대학로티오엠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