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러들었던 작년을 지나 제대로 생존하려는 노력이 곳곳에 보인다. 개인·조직·사회 모두의 당면 문제는 불과 1년 전과도 비교가 어려우며, 그래서 더욱 새로운 관점과 대안이 필요한 때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초단편 ‘호모콘피누스’에서는 코로나 이후 격리된 인간의 삶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영감·호기심·상상하는 힘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늘 새로움을 갈구하면서도 정작 우리가 얼마나 넓고 깊게 상상할 수 있는가는 자주 놓친다. 그러면서도 작가나 디자이너 등 여러 크리에이터들을 만나면 늘 ‘영감의 원천이나 상상하는 방법’을 묻는데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이 매일의 일상에서 얻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주변을 자유롭게 탐색하며 발견한 것들을 자기 영양분으로 만드는 데 능숙한 탐색왕일 텐데 타고난 기질도 있겠지만 루틴의 힘이 만들어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호기심과 상상은 일상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관찰을 통한 문제의 발견과 새로운 대안 모색을 가능하게 한다. 기업에서 신사업 아이디어나 제품을 기획할 때, 공공을 위한 환경문제나 미래 교육과 관련해서도 창의적인 방법으로 대안을 찾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한다.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보통사람이 어떤 장치 없이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므로 ‘이매진 월드(Imagine World)’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그 안의 일들을 기획하게 하거나 비관련 요소 조합, 오감 연상을 통해 발상의 폭을 넓히며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에 생각을 보태 또 다른 생각을 만들어내게도 한다.
얼마 전 한 대기업 디자인연구소와 ‘인사이트 저니’를 진행했다. 여정의 시작은 실제 업무와 조금 거리가 먼 분야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이방인의 눈으로 진화하는 인간의 뇌, 도시와 이동, 자연의 법칙을 바라보고 관점을 확장해 미래 지구생활에 필요한 새로운 무엇을 기획해 보자는 ‘Hello, Stranger’라는 제목의 초대장이 전달되었고 이후 아이디어를 디벨로프할 스무 명 가량의 멤버들이 모였다. 당장의 양산과제에 고민이 많은 이들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구인이 아닌 존재에 빙의시키는 장치가 필요했다. ‘이게 되겠냐, 우리가 애들이냐’ 했던 멤버들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재미있어했고 몇차례의 딥다이브(Deep-Dive)를 통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며 서로 대견해했다. 당 부족을 느낄 정도로 힘들었지만 너무 신이 난다며 아이 때로 돌아간 것 같다던 이들은 최소 7년에서 20년 이상 해당 업무를 해 오던 프로들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CF·영화감독과 미디어 아티스트, 디자인 디렉터와 함께 디벨로프한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높이는 대화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탐색과 발견, 상상의 힘으로 여는 세계는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상의 호기심,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과 관찰, 거기에서 시작하는 무한한 상상이 가져오는 힘을 즐기기 위해서는 매일의 노력으로 상상근육을 키워야 한다. 상상력과 창의력 또한 루틴의 힘을 믿어보자. 만물이 동면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한참 지나 이제 곧 춘분이다. 몸과 마음을 열고 빵 부스러기를 나르는 개미만 봐도 신기해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보자. 주변의 수많은 현상들을 매일 하나씩 붙잡고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를 상상해 보자. 인간이므로 누릴 수 있는 상상의 힘을 되찾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