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평범한 일상을 갈망한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우리 정부는 지난달 말부터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을 시작해 올해 11월까지 전 국민의 70%가 백신을 맞는 집단면역을 형성하겠다고 밝혔다. 언제쯤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15일 서울시 관악구 국제백신연구소(IVI)에서 만난 제롬김(62)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총장은 “올 연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보다 확실한 건 2022년이 돼야 마스크를 쓰기 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러한 예측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원활한 백신 공급’이다. 김 사무총장은 “한국의 예방접종 프로그램을 평가하기엔 현재 접종한 사람 수가 너무 적다”라면서도 “다만, 한국은 예방접종 필요성의 우선순위가 낮은 사람에게 먼저 접종하고,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는 뒤늦게 접종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노인, 의료 종사자에게 우선 접종한다는 측면에서 예방접종 프로그램이 현재 잘 진행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11월 집단면역 달성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한국의 백신 예방접종 능력보다 백신의 공급이 제때 원활히 이뤄지는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아직 국내 백신 공급 물량은 정부 목표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코로나19 백신 접종 목표는 1200만 명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도입된 코로나19 백신 물량은 84만5000만 명분으로, 계약 물량의 1%에 불과하다. 정부는 6월까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455만 명분, 화이자 백신 350만 명분을 포함해 총 890만 명분의 백신이 도입될 예정이라고 발표했지만, 이 역시 목표치 1200만 명에는 못 미친다.
백신 공급에 관한 문제뿐 아니라 백신 접종 후 부작용 문제가 연이어 보고되면서 접종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하고 있다. 다만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는 시간적 선후 관계일 뿐 아직 백신 접종이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인과관계는 밝혀진 바 없다. 그런데도 일부 국가들은 예방적 조치로 특정 백신에 대한 사용을 잠정 중단했고, 국내에서도 백신 접종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김 사무총장은 임상 3상 참여자 수, 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자 수를 고려할 때 백신 안전성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입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2억 5000만 도스 이상의 코로나19 백신을 투여했는데 접종 후 우려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 또 백신 임상 3상에 20만 명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를 통해 백신 안전성은 증명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독감백신 접종 때 알게 된 것처럼 매일 일정한 수의 사람들, 특히 특정 연령대 사람들이 사망한다. 한국 정부는 물론 유럽의약품청(EMA), 세계보건기구(WHO) 모두 백신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백신 접종 ‘신중론’에 맞서는 것이 바로 ‘속도론’이다. 현재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은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효과가 무력해지고 있는 만큼 백신 접종으로 빠르게 집단면역을 이루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사무총장 역시 속도론을 강조했다. 그는 “변종은 바이러스가 빠르게 전파할 때 생기는 것인 만큼 가능한 많은 사람이 백신을 맞는 것이 질병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변종의 출현도 감소시킨다. 그런 만큼 지금은 우리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백신을 접종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 백신 접종에 따른 집단면역 형성 등 이 모든 것들은 백신 개발 후발주자인 국내 업체들과 선두주자인 다국적 제약사의 간극을 더욱 멀어지게 한다. 긴급사용승인 후 임상 3상을 진행 중인 다국적 제약사와 달리 국내 업체들은 모두 1상이나 1/2상의 임상 초기 단계다. 현재 코로나19 백신 임상에 진입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은 제넥신(GX-19N), SK바이오사이언스(NBP2001ㆍGBP510), 진원생명과학(GLS-5310), 유바이오로직스(유코백-19), 셀리드(AdCLD-CoV19) 등 5개 기업 총 6종이다.
김 사무총장은 국내 업체들이 뒤늦게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우리만의 강점으로 경쟁력이 있는 백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다국적 제약사 백신들이 긴급사용승인을 받았다. 한국은 올해 말까지 유효성 중간 분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국내 개발 백신은 2022년까지는 출시될 것으로 전망한다”라며 “국내 개발 백신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개 합성항원(재조합 단백질) 백신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안전한 백신이고, 임산부와 어린이에게도 접종할 수 있다. 또 국내 업체들은 우리 몸의 면역반응을 더 잘 일어나게 하는 면역증강제(adjuvants)를 백신에 첨가하는데 이를 통해 빠르고 강한 면역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국내 개발 백신은 이런 점들로 미뤄볼 때 팬데믹 상황에 훌륭한 백신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이 빠르게 시작되고 있는 만큼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총장은 “현재 한국은 예방접종을 시작했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감염률이 낮고, 또 연말까지 집단면역을 이룬다는 목표가 있어서 임상시험을 수행하긴 어렵다. 한국이 아닌 예방접종이 더딘 국가에서 임상시험을 하는 게 적절하다”라며 “안전성과 효능에 대한 정보를 식별하기 위해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국제백신연구소와 미국 기업 이노비오가 협력해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은 현재 한국과 미국에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올해까지 임상 3상 데이터를 도출할 계획이고 상용화 시점은 2022년으로 예측한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빠르게 확진자를 가려내는 진단기술로 ‘방역 모범국가’로 불렸지만, 백신이 개발되고 상황은 역전됐다. 정부가 백신 개발업체에 자금을 투자하거나 선 구매 계약을 하지 않아 백신을 조기에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이웃 나라보다 뒤늦게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백신 확보 전쟁에 뒤처진 정부의 대응이 안일했다며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정부는 오판을 시인했다. 그러나 김 사무총장은 한국이 백신 확보보다 방역에 힘쓴 것이 결과론적으로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은 백신 개발 비용을 지원했고, 사전 주문한 비용까지 내면서 180억 달러를 투자했다. 백신은 개발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개발 후엔 자금 지원국에 우선으로 백신을 공급한다. 미국은 백신을 얻기 위해 12배 더 많은 돈을 지출한 셈”이라며 “다만 미국은 전염병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백신 개발이 유일한 선택이었고, 한국은 전염병을 성공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기에 백신을 빨리 개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질병을 통제하며 다른 나라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기다리는 것, 이 선택에 장단점이 있지만, 한국은 바이러스를 통제하고 감염자를 신속하게 치료하는 데 집중한 덕에 미국이나 유럽보다 감염률이 높지 않았다. 이 선택은 좋은 결정이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사무총장은 “결과적으로는 올해 연말 한국과 미국은 같은 속도로 집단면역을 달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