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이상 매출만 있으면 OK
사용처 달라져도 확인할 길 없어
만기·납입유예 기한 또 연장될 듯
“매출이 없어서 대출 신청을 못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업종에 상관없습니다. 등급 요건도 높지 않아 6등급이면 승인이 됩니다.”
A 시중은행 창구 영업 직원은 정 씨가 전자상거래업을 운영하는 데도 코로나 관련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묻는 말에 이같이 말했다. 사후관리는 차치하고, 대출 문턱이 낮은 점은 굳이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되는 정 씨처럼 돈을 빌릴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정 씨는 이렇게 최대 20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한 소상공인 지원 프로그램의 손을 빌렸다. 은행은 정 씨에게 세금지출 내역서와 임대차 계약서, 매출 증빙서류 등을 요청했다. 은행권이 코로나19 사태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 지원한 대출 규모는 약 80조 원에 이른다. 지난해 9월 한 차례 미뤄진 만기 연장·납입 유예 시한이 다시 이달 말로 다가오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강력한 요청 등에 은행들이 결국 재연장을 받아들였다.
◇실낱 희망,코로나 대출의 역설 = 소상공인 대출을 승인받은 정 씨는 자신 명의의 통장으로 대출금을 받아 동업자인 신 씨와 함께 사용하는 법인 명의의 계좌로 돈을 옮겼다. 은행에서 돈의 사용 내역을 세세하게 들여다보지 않는 것은 알았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좌에 새길 이름만은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세탁된 자금은 다시 법인 계좌에서 정 씨의 주식 계좌로 옮겨갔다.
자금의 용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코로나 대출의 실행 과정 역시 정 씨를 동학 개미로 만든 이유 중 하나다. 코로나 대출을 취급하는 은행 창구는 6개월 이상의 매출만 잡히면 대출을 실행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업종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고 일정 기간 매출이 있던 자영업이라면 무조건 코로나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정 씨가 사업 자금으로 쓰겠다며 은행으로부터 가져온 돈은 사이버 공간 속 장부로 쪼개져 매일 등락을 반복하고 있었다. 누구가에겐 실낱같은 희망의 1000만 원이 누구가에겐 용돈 벌이용 자금에 불과했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돈이 남으니까 투자하는 것이고 여력이 있으니 투자를 한 것”이라며 “정책의 타겟팅이 잘못됐다. 부채를 당장 안 갚아도 되는 사람이 받아가 그 사람들에겐 여윳돈이 생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코로나 대출, 사용처 확인할 방법 없어 = 문제는 정 씨처럼 대출이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사업자금’ 외에 사용한다고 해도 이를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정 씨는 ‘사업자금’ 용도 목적으로 서류를 작성해 대출을 신청했다. 통상 사업자금 용도는 인건비나 원자재비 외에도 다양하게 쓸 수 있기에 이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현재 은행 창구에서 소상공인을 상대로 대출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신용보증재단을 통한 소상공인 대출, 다른 하나는 소상공인 N차 금융지원 프로그램이다. 후자의 상품은 다시 범용업종을 위한 상품과 ‘집합제한업종’을 위한 상품으로도 나뉜다. 집합제한·임차 소상공인 특별지원 프로그램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한제한에 묶인 업종만 대상으로 한다. 정 씨는 포괄적인 개인사업자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소상공인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정 씨가 운영하는 전자상거래업은 코로나19 여파의 타격이 크지 않아도 대출이 된다.
특히 소상공인 금융지원 프로그램은 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보증재단의 보증을 받을 수 있다. 금리도 저렴해 소상공인들이 주로 찾는 상품이다. 다만 사후관리 측면에선 관리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보증재단에선 보증만 심사하고 관리는 은행으로 넘긴다. 은행도 보증재단에서 보증을 받고 넘어온 것이기에 심사를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
한영섭 세상을 바꾸는 금융연구소장은 “(용도 외 사용을) 막기 사실상 어렵다. 어쩔 수 없다. 제약을 할 방법이 많지 않다”며 “어디에 썼는지 금융기관 보고 받거나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그럼 또 다른 문제 발생한다. 목적과 달리 돈이 집행돼도 일정부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