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문화역서울 284에서 진행된 기획전시 '보더리스 사이트' 기자간담회에서 김보현 큐레이터는 '경계 없는 경계'를 표현한 이번 전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보더리스 사이트'는 문화역서울 284의 'DMZ'와 '개성공단'에 이은 지역 연구 전시 프로젝트다. 전시는 압록강을 사이에 둔 북한과 중국의 접경 지역인 신의주와 단둥의 '경계'에 중점을 뒀다. 신의주와 단둥은 쌍둥이처럼 닮았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품고 있다. 외부인들에겐 제한된 풍경만 드러내기 때문에 쉽게 타자화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김 큐레이터는 "'신의주-단둥' 지역은 오랜 시간 국경을 넘나든 흔적과 함께 서로의 문화와 시간이 혼재된 기록이 남아있다"며 "서로 다른 국가의 경계가 맞닿아있는 접경지역의 모습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총 세 개의 파트로 구분된다. 김보용, 김주리, 김태동, 김 황, 라오미, 맛깔손, BARE, 서현석, 신제현, 이원호, 임동우, 이주용, 이해반, 전소정, 정소영, 최윤, 코우너스, 황호빈 등 18명의 작가는 자신의 시선으로 경계지역을 소개한다.
작가들은 접경지역이 오랫동안 품고 있는 특징이나 불연속적이고 혼종된 시간성을 회화, 조각, 음악, 건축, 퍼포먼스 등으로 표현했다.
신제현의 '회전하는 경계'는 건설 당시 '태양 호텔'로 불렸던 신의주의 원형 건물을 재현했다. 구조물과 두 개의 실시간 영상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남한과 북한 사이 경계에 대한 허상과 실체를 노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인지 부조화를 불러일으킨다.
태양 호텔이 이데올로기를 태양으로 형상화한 과시용 건축물이 아닌 실제 살림집(아파트)이었다는 해프닝은 접경 지역을 둘러싼 불투명한 시설을 여실히 보여준다.
임동우의 '복수 간판'은 중국인, 북한인, 한국인, 북한 화교 등이 뒤섞여 살아가는 경계 도시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조선어와 한글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혼종적이고 융합된 문화의 상징물처럼 보이는 한글 간판을 통해 낯선 경계의 새로운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한국전쟁 이전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간 이미륵(1899~1950)은 그의 저서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고향 땅을 바라보며 삭막한 중국과 강 너머의 그리운 풍경을 회상한다. 정소영은 지난해 팬데믹 이후 더욱 강화된 경계와 멀어진 거리감이 어떻게 기억을 재구성하는지 조형적으로 살피면서 20세기 이미륵과 21세기 자신 사이에 흐르는 압록강의 시간을 연결한다.
북한의 신의주, 중국 단둥 간의 국경이자 지도상의 경계선인 압록강 위에서 촬영된 사진들도 전시된다. 김태동의 '온 더 리버(On The River)'다. 강 너머로 빨래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탄 아저씨, 공장들이 곳곳에 분포한 작은 도시의 평범한 풍경이 가득 담겼다.
김태동은 "픽셀 단위의 극단적인 크롭 혹은 연속사진에서 가능한 여러 방식의 시간 구성, 사진 편집과정에서 스스로 행한 도덕적 검열 등 촬영 이후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VR로도 체험할 수 있다. 서현석의 '안개 1, 2'는 관습이 묘연한 경계를 규범화하는 일상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단둥과 신의주를 가르는 경계선 역시 유연하다고 인식하고, '경계'의 모순적 양면성을 탐구한다.
전시 기간 서현석, 김황, 김보용 작가의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안창모 경기대 교수가 남북한을 연구한 리서치 자료도 살펴볼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해서도 관람할 수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최하고 정림건축문화재단이 주관한 전시는 5월 9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