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택배기사 또 쓰러졌는데…대책은 ‘외국인 노동자’ 투입?

입력 2021-03-17 13:41 수정 2021-03-2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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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상·하차 업무에 ‘외국인 고용門’ 열리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
노동계 “근무환경 개선 대신 외국인 노동자에게 떠넘기려는 꼼수”
자동화 설비 도입·임금 개선 등 내국인 고용 확대 노력 선행돼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로젠택배 본사 앞에서 로젠택배 김천터미널 소속 택배노동자가 전날 숨진 것과 관련, 로젠택배의 사회적 합의 이행 동참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로젠택배 본사 앞에서 로젠택배 김천터미널 소속 택배노동자가 전날 숨진 것과 관련, 로젠택배의 사회적 합의 이행 동참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택배 상·하차 업무’에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섰다. 고용난을 해결하기 위한 취지라지만,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대신 발언권이 약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짐을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15일 물류터미널 운영업에서 하역·적재 업무에 외국인이 취업할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물류터미널 운영업과 농산물산지유통센터의 과실·채소류 도매업, 식육 운송업, 광업 등에 방문취업(h-2) 비자를 가진 외국인 노동자가 취업할 수 있도록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올 하반기부터 택배 상·하차 업무에 외국인 노동자를 투입할 수 있다.

저임금·중노동 직종인 상·하차 작업에 ‘외국인 취업 허용’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택배 물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에 비해 물류터미널 시설 개선이나 인력 충원 속도는 턱없이 더딘 편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외국인 인력 고용을 허가하는 ‘고용허가제’ 적용 업종에 택배업을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혀왔다.

‘물류 상·하차-분류-배달’로 이어지는 택배 노동 중 특히 상·하차 작업은 주로 야간에 이뤄지고 노동 강도도 높아 대표적인 ‘저임금 중노동’ 직종으로 꼽힌다. 대개 대형 택배사의 하청-재하청을 통해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하지만, 규모가 작은 지방 직간선 터미널에서는 택배기사들이 직접 상·하차 작업에 동원되기 일쑤다.

강민욱 전국택배노동조합 교육선전국장은 “올해 1월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1차 합의문을 마련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1차 합의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작업범위를 택배 집화와 배송할 택배를 차량에 상차하는 작업으로 한정했지만, 며칠 전 택배기사가 뇌출혈로 사망한 로젠택배와 CJ대한통운·한진택배·롯데택배 등 일부 터미널에서도 분류 및 상·하차 작업을 여전히 배송기사에 전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1월 21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구성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사·정은 이날 불공정 거래행위를 금지하고 분류작업 비용을 택배기사에게 전가하지 않는 내용의 사회적 합의문을 체결했다. (뉴시스)
▲올해 1월 21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구성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사·정은 이날 불공정 거래행위를 금지하고 분류작업 비용을 택배기사에게 전가하지 않는 내용의 사회적 합의문을 체결했다. (뉴시스)

과로사 대책 사회적 합의에도 배송기사들 ‘상·하차 및 분류작업’ 동원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을 입법 예고했던 날에도 로젠택배 경북 김천터미널 소속의 한 택배기사가 과로로 쓰러져 의식불명 끝에 사망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김종규(51) 씨는 지난 13일 오전 택배 분류작업을 마치고 배달을 나갔다가 자신의 차 안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뇌출혈과 의식불명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진 김 씨는 이틀간 사경을 헤매다 지난 15일 밤 숨을 거뒀다.

김 씨는 주 6일을 매일 오전 7시 50분에 출근해 보통 오후 6시까지 일했다. 하루 10시간, 주 60시간을 일한 셈이다.

대책위는 “고인이 김천시 대덕·지례면에서 152㎢에 달하는 면적을 홀로 담당했다”면서 “과도하게 넓은 배송구역과 장시간 노동으로 쓰러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에 동참을 거부하고 있는 로젠택배의 무관심·무대책이 부른 참사”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노동자 허용하기 전에…임금 개선·안전한 작업환경 조성 먼저

노동계에서는 이번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택배사들이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 대신 싼값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해 결과적으로는 코로나19 시대에 그나마 몇 개 없는 내국인 일자리마저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강민욱 택배노조 교선국장은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허가하기에 앞서 택배사들이 내국인 고용 증진을 위해 근무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동화 설비 도입 등 물류터미널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면서 내국인 고용을 늘리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력난이 지속될 때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강민욱 교선국장은 “상·하차-분류-배송 순서로 이어지는 물류터미널 작업 특성상 앞선 작업이 늦어지면 점점 지체돼 배송기사들의 노동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상·하차 작업자의 임금 개선과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 등 근무조건을 개선한 뒤에도 인력난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불가피하게 외국인 채용을 허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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