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투기가 뭔지, 누가 어떻게 하는지 바로 알았다

입력 2021-03-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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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투기(投機)와 투자(投資)의 분별은 모호하다. 경제적 관점에서 ‘생산과 관계없이 이익만 추구하기 위해 자산을 매입하는 행위’를 투기라고 하고, 돈을 벌려는 목적은 같지만 생산활동을 전제하는 것이 투자로 풀이된다.

주식투자의 전설인 워런 버핏은 “자산을 산 뒤 두발 뻗고 잠잘 수 있으면 투자, 밤잠을 설치면 투기”로 구분했다고 한다. 버핏이 스승으로 삼았던 이가 벤저민 그레이엄이다. 1930년대 미국 월가에 과학적 투자기법을 처음 제시한 ‘현대 증권분석과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철저한 분석으로 원금 안전과 충분한 수익을 약속받는 게 투자이고,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투기”로 규정했다.

주식 사고 파는 걸 투자라고 하지만, 기실 주식시장이야말로 공인된 투기판이다. 그러면 수요는 많은데 희소가치가 높아 값이 오른다는 기대로 서울의 아파트를 사는 것은 투자인가 투기인가? 한국에서 주식과 부동산을 산 사람 가운데 누가 발뻗고 잘 수 있는가? 무엇이 원금 안전성과 수익을 보장받는 안전자산인가? 망해도 집이나 땅은 남지만 주식은 휴지조각으로 날아간다.

하루에도 시시각각 값이 오르내리는 변동성을 좇으면서 부나방들이 ‘빚투’(빚내서 투자)로 몰빵하는 곳이 바로 주식시장이다. 위험도 높은 종목을 잘 치고 빠져야 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 지배한다. 온갖 작전과 루머, 뇌동(雷同)매매가 난무하고, 수많은 시장참여자들의 비이성적 기대에서는 광기마저 느껴진다.

논란이 되는 공매도(空賣渡)는 올라야 좋은 주식값이 내리는 쪽에 베팅(betting)해 돈을 버는 기법이다. 베팅은 도박판의 말이다. 정말 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모르고 실체도 없으며, 미래도 불분명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불붙었다가 어느 순간 꺼진다. 여기에 달려드는 것은 투자인가 투기인가?

투자는 좋고 투기는 나쁘다. 그런데 나쁜 투기가 뭔지, 누가 어떻게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제대로 가르쳐 줬다. 정부 부동산정책 집행기관의 내부정보를 쉽게 아는 임직원들이, 대출통제가 느슨한 단위농협 등 제2금융에서 거액을 빌려 쓸모없는 맹지(盲地)까지 샀다. 그곳이 신도시가 되고, 그들은 보상기준에 맞춰 필지를 쪼갰다. 허위영농계획서도 만들고 더 많은 보상을 타내기 위해 희귀종 나무까지 빽빽이 심었다.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르는 투기 고수(高手)들의 솜씨가 다 동원됐다. 그리고는 블라인드 앱에서 “투자도 못하냐?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다”라는 글로 국민들을 조롱하고, 얼마 전까지 LH 수장이었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일부 직원의 일탈”이라고 남 말 하듯 한다.

정부가 합동조사로 시끄럽게 나섰지만 투기 정황이 있는 LH 직원 고작 몇 명 더 찾아냈다. 졸속의 겉핥기에 애초 기대할 게 없었고, 깊고 넓게 뿌리박힌 부패구조의 한꺼풀도 못벗겨 냈다. LH 직원 뿐이 아니다. 캐면 캘수록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 나올 공산이 크다. 어김없이 정치인, 공무원들이 투기에 앞장선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부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지금까지 25차례의 부동산대책을 쏟아냈다. 한결같이 집을 사고 팔기도, 비싼 집 갖고 있기도 힘들게 만든 조치였다. 은행 대출 막고,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세금폭탄 퍼붓고, 막대한 부담금 부과와 분양가상한제로 재건축을 차단하고, 다주택자에게 집 팔라고 강요하는 등 종류도 셀 수 없다. 공급 위축과 집값 폭등의 악순환이 그 결과다. 이제 ‘공급쇼크’라며 25번째의 ‘2·4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 또한 시장생태계를 무시하고 개발수익 환수에 초점을 맞춘 공공주도 개발이다. 시장이 투기판이고, 그래서 집값이 오른다는 그릇된 착각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공공이 진짜 투기의 온상이었고, 그들끼리 은밀하게 따로 배를 불린 세계였다. 정부는 제 발밑이 지뢰밭인데, 어떻게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이라도 해서 내집 마련하려는 사람, 평생 고생해 집 장만한 이들을 투기꾼으로 몰아 엉뚱한 과녁에 포탄을 퍼부은 꼴이다. 내집의 꿈이 멀어진 서민들의 절망, 피땀으로 일군 집에 세금 징벌을 당하는 중산층의 고통만 커졌다.

그런데도 이미 완전히 신뢰잃은 ‘변창흠표’ 공공개발을 계속 고집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택공급 정책에 대한 믿음이 흔들려선 안된다”며, 2·4대책의 속도를 높이라고 한다. 민심의 분노, 국민의 불신, 시장의 반발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딴 세상 얘기다. 이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정말 갈수록 답이 없어지고 있다. kunny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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