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 달 전 내놓은 2·4 공급 대책은 꽤나 파격적이다. 공급 규모도 역대급이고, 개발 방식도 획기적이다.
일단 엄청난 숫자가 눈길을 끈다. 정부가 밝힌 공급 물량은 83만6000채다. 기존 수도권 127만 채 공급 계획과 기타 공급 대책 등을 더하면 총 205만 채다. 200만 채 주택 건설로 집값 안정을 도모했던 노태우 정부 때를 웃도는 메가톤급이다.
서울에 짓겠다는 32만3000채는 강남3구 전체 아파트 수와 맞먹는다. 대책 발표 당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이번 공급 대책 물량은 ‘공급 쇼크’ 수준”이라고 흥분할 만도 했다.
공급 방식은 파격 그 자체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공공 직접 시행’이라는 개발 카드를 꺼내들었다. 재개발·재건축 단지와 역세권·준공업지 고밀 개발을 통해 도심 주택 공급을 늘리되, 그 주체는 민간이 아니라 공공(公共)이 하겠다는 거다. 공공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을 말한다.
지금까지 정비사업 등에 공공이 나서 관리자 역할을 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이번은 차원이 다르다. 공공이 민간 땅의 소유권을 넘겨받아 개발사업을 직접 시행하겠단다. 공공이 사업을 주도하면 개발이익 독점을 막고 진행 속도도 높일 수 있다는 게 도입 명분이다.
정부는 정비사업지 내 민간 땅 수용권 확대를 위해 지금까지와 다른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기존 법도 뜯어고칠 참이다. 이미 여당은 정부에서 관련법(‘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을 넘겨받아 발의했다.
개정 법안에 따르면 주민 3분의 2가 동의하면 재개발·재건축을 공공이 직접 시행할 수 있다. 주민 10명 중 3명이 반대하더라도 공공이 땅을 수용해 사업을 강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공공 주도 역세권 고밀 개발사업(‘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에도 토지 강제 수용권이 발동된다. 얼마 전 여당이 발의한 ‘공공주택특별법’(공특법) 개정안은 LH 등이 주민 10분의 1 이상 동의를 받아 사업지구 지정을 제안하고, 주민 3분의 2가 찬성하면 부지를 수용해 사업을 직접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신도시나 대규모 공공택지 개발에 쓰던 공특법을 기존 도심권에 적용, 사유 재산을 몰수하다시피하는 공급 방식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초법적이다.
이러니 공공 주도 개발사업에 대한 시장 반응이 좋을 리 없다. 공공 개입을 원치 않는 주민들은 차가운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용적률을 올려 수익성을 높여 주고 재건축 조합원 거주 의무와 초과이익 부담금도 면해 주더라도 토지 소유권과 사업권을 공공에 넘기는 개발사업에는 아예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공공 직접 시행 재건축 사업에 초과이익환수와 2년 실거주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을 당근책으로 봐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둘 다 이전 정부에서는 없던 규제다.
공공 직접 시행 사업 예정지인 도심 토지 대부분은 사유지다. 땅주인들이 응하지 않으면 서울 32만여 채 공급은 ‘숫자 놀음’으로 끝날 수 있다. 2·4대책이 현실을 제대로 모른 채 내놓은 ‘뜬구름 잡기 대책’이라고 비판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과정이 순탄하게 이뤄져도 실제 입주 가능 시점은 5~7년 후다. 그동안 대선 등을 거치면서 부동산 정책이 어떻게 요동칠지 아무도 모른다.
집값 불안을 잠재우려면 수요가 원하는 곳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길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도심 공급 물량 확대로 방향을 튼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주택 공급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86%에 이르는데도 민간 중심이 아닌 공공 주도를 고집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을 일을 도맡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고 또 존재 이유다.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민간에 맡겨야 한다. 시장이 존재하는 분야에서는 더 그렇다.
정부는 주택 공급 주도권을 민간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관제의 망령’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야 집값도 잡고 국민의 주거 불안도 해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