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추진을 작심 비판했다. 윤 총장은 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검찰의 수사권을 분리해 중수청에 넘기도록 하는 입법 움직임에 대해 "민주주의의 퇴보"라는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대검찰청은 “‘중대범죄 대상 검찰 직접수사권 전면폐지’를 전제로 한 중수청법에 대해 우려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총장은 중수청 설치 추진에 대해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하는 것이며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을 흔드는 정도가 아니라 폐지하려는 시도”라며 “거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 공소유지 변호사들로 정부법무공단 같은 조직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 총장은 “검찰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은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입법이 이뤄지면 치외법권의 영역은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보통 시민들은 크게 위축되고 자유와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 총장은 “직을 걸고 막을 수 있다면야 100번이라도 걸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께서 관심을 가져 주셔야 한다”며 “졸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도록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관계 속에서도 '사퇴 불가' 입장을 고수해 온 윤 총장의 태도를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윤 총장 발언은 여당이 중수청 설치 입법을 철회한다면 총장직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총장은 초임 검사 때부터 어떤 사안에서도 직에 연연하지 않았다”며 “국민이 결국 피해를 볼 제도가 만들어지는 부분에 대해 공직자로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검찰 내부에서도 중수청 설치 추진에 대한 반발 기류가 커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윤 총장은) 수사와 기소는 성질상 분리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밝혔다”며 “전문수사청, 전문검찰청은 수사와 기소가 융합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수사와 기소 분리가 선진 사법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나라들의 추세라는 여권의 핵심 명분도 부정했다.
검찰 관계자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사법 선진국에서는 도저히 입법례를 찾아볼 수 없다”며 “중대범죄에 있어서 검찰 수사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고 단언했다.
대검은 중수청 설치에 대한 일선청의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 취합이 끝나면 이를 토대로 추가 입장을 내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이날 윤 총장의 발언을 두고 여당은 대응을 자제하면서도 “충실히 입법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는 공정한 검찰을 만드는 것으로 국민을 위한 검찰을 만드는 과정을 입법 과제로 충실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겠다”며 윤 총장과도 만날 의향이 있다고 했다.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검찰 수사권 폐지로 형사사법체계가 무너지면 부패가 창궐할 거라는 윤 총장의 호소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혔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도 “정권과 검찰과의 갈등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조짐”이라며 “대한민국의 형사사법시스템을 국회의 거수기들을 이용해 갈아엎으려는 시도에 대한 저항”이라고 평가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중수청 설치 추진 자체가 성급했다는 의견이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각국의 상황에 맞는 형사사법시스템이 필요하다”며 “한번 바꾸면 되돌리기 어렵고, 변화에 따른 영향도 큰 만큼 심도 있는 논의와 오랜 기간 검토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윤 총장은 3일 오후 4시 대구고검과 대구지검을 방문해 현장 간담회 일정을 소화한다. 이날 윤 총장은 중수청 등에 대한 추가 입장을 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