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를 보며 자주 소름이 돋았다. 드라마가 그리는 디스토피아가 무척이나 설득력 있어서일 것이다.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회계사라는 직업이 사라지고, 원숭이 독감이 창궐해 사망자가 속출하는 모습은 현실과 그리 동떨어져 보이지 않는다.
‘이어즈 앤 이어즈’는 2019년부터 2034년까지 미래를 정치, 기술, 환경 등 다양한 방면으로 비춘다. 마냥 암울한 모습만 그리는 것도 아니다. AI 스피커가 와이파이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는 모습이나 이모지가 오프라인으로 튀어나와 마스크를 쓰듯 이모티콘을 얼굴에 쓰는 모습은 오히려 ‘바라던 미래’와 가까웠다.
드라마에 나타난 디스토피아는 기술의 발전과 진보적 가치관의 역설을 파고든다. 시도 때도 없는 정전이 대표적이다. 원전의 위험으로 친환경 전기 생산에 투자하는데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자 정전 사태가 일상화된다. 양자 보안이 대중화할 만큼 보안 기술이 발전하지만, 정전에 대비하기 위해 정말 중요한 자료는 종이로 출력해 둔다. 종이 문서의 시대로 퇴화한 셈이다.
90세 할머니도 AI와 자연스레 대화하는 시대이지만, 같은 시간 난민 수용소에서는 통신이 먹통이다. 우익 성향의 총리인 비비안 룩은 거대한 난민수용소를 만들고, 통신을 끊어 놓았다.
통신사들이 망 구축 경쟁을 하지 않고, 통신 사업 자체가 온전히 국가 손에 들어간다면 충분히 우리도 그려볼 수 있는 미래다. 지금처럼 통신 업계의 최대 화두가 ‘탈 통신’이라면 더 그렇다. 통신사가 통신업에서 손을 떼면 그땐 국가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통신사들은 시장이 포화한 무선통신에서 눈을 돌려 분주하게 신성장 동력 발굴에 힘썼다. ‘탈 통신 원년’이라는 말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이 같은 노력은 실적에서도 두드러졌다. 통신사들의 호실적은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미디어, 플랫폼 등 통신 외 부분에서 비롯했다.
통신사들은 5G 설비투자(CAPEX) 규모를 지난해 대폭 줄여 놓고도 올해 그 수준을 유지하거나 줄이겠다고 밝혔다. 전체 CAPEX에서 신성장 분야를 확대한다는 곳도 있었다. 다른 말로 5G 설비 투자 비중은 줄이겠다는 뜻이다.
기업이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사업을 다각화하겠다는데 어느 누가 뭐라 하겠는가. 다만 주파수 자원은 공공재이고, 5세대(5G) 이동통신 품질 불만은 5G 상용화 3년 차인 지금까지 여전하다. 3사가 6000억 원을 들여 할당받은 28㎓ 주파수는 지난해 제대로 기지국 구축을 안 해 무용지물이 됐다. 통신사가 ‘탈 통신’을 하겠다는데 왜 우려가 나오는지를 깊이 자문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