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그림에 표시된 2000년 이후 월간 주가 흐름을 살펴보면, 삼성전자가 얼마나 힘든 시기를 겪었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삼성전자의 직전 고점 대비 최대 낙폭(MDD, Maximum Drawdown)을 보면,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70% 그리고 2000년 정보통신 거품이 붕괴될 때에도 -60%를 기록했다. 예전에만 그런 게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역시 -40%를 기록했으며, 2018년 미·중 무역분쟁 당시의 최대 낙폭도 -30%에 달했다.
주가가 폭락하는 것에 못지않게 괴로운 일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내가 보유한 주식이 시장에서 소외될 때’이다.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이었던 2007년, 필자는 한 시중은행의 딜링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면서 다음과 같은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 회사 주가는 왜 이렇게 부진할까요?”
이 질문을 한 사람은 삼성전자 관계자로, 주식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삼성전자 주가가 박스권에서 꼼짝 못 하는 게 너무 이상했던 모양이다. 필자도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었던 터라 조사해 보니, 삼성전자 주가 부진 원인이 명백했다. 당시 유례를 찾기 힘든 주식 펀드 붐이 불었건만 펀드 내 삼성전자의 비중이 낮았던 것이다. 물론 펀드매니저들이 삼성전자를 전혀 편입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삼성전자가 코스피지수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라면, 펀드 내에는 10%만 편입하는 식으로 투자했던 것이다. 반면 주식형 펀드 내에서 비중이 높은, 다시 말해 코스피지수 내 비중보다 압도적으로 더 주식을 사들인 종목군은 중공업이었다. 조선과 화학, 철강 등 이른바 중화학공업의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따라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정보통신기업은 2007~2008년의 뜨거운 랠리 속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비슷한 일이 2015년에 다시 벌어졌다. 화장품과 바이오, 여행 등 이른바 ‘중국 관광객’ 테마가 불을 뿜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한 기관 소속으로 부진한 성과를 개선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던 시절, 여의도에서 일하던 옛 직장 동료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회사 포트폴리오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아무리 친한 사이라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그가 나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했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수익률 부진 때문이었다. 그는 수익률 부진의 원인이 삼성전자처럼 ‘무거운 주식’을 잔뜩 편입한 데 있다며, 지금이라도 당장 소비재 관련 기업에 투자하라고 간곡하게 권유했다. <그림>의 두 번째 ‘박스’가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기다.
당시를 회고해 보면,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다. 옛 동료만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성과를 개선시킬 것인지를 둘러싸고 매일처럼 회의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주식을 매입한 후 10년 뒤에 계좌를 열어보는’ 일이 가능할까? 특히 최근처럼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 등을 통해 주식시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받는 시대에 말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제기된다. 혹시 우리 말고 미국에서는 ‘우량주를 매수하고 잊어버리는 전략’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버턴 말킬 교수는 그의 베스트셀러 ‘랜덤워크 투자수업’에서 다음과 같이 ‘니프티50’ 장세에 대해 회고한다.
“1970년대 초반 최고 등급 우량주로 거론된 기업은 48개였다. IBM, 제록스, 코닥, 맥도널드, 디즈니 등 모두 친숙한 이름이다. 이들은 ‘거대 자본’ 주식이었다. 그래서 기관이 대량으로 주식을 매수한다고 해도 시장이 혼란에 빠질 위험은 없었다. 그리고 전문가들 대부분 정확한 매수 시점을 선택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대단히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러한 우량주는 사들이기에 좋은 종목이었다. 일시적으로 상승한 가격에 산다고 해도 문제될 게 뭐란 말인가? 우량주는 검증된 성장주이고 조만간 가격 상승으로 존재감을 입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 번의 결정(One Decision Stock)’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우량주를 매수하기로 결정을 내리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문제는 끝나는 것이다.”(책 77쪽)
최근 필자가 들었던 “경제 분석하느라 애쓸 필요 없이 삼성전자만 사면 된다”라는 말과 너무 유사하지 않은가? 그리고 짐작하는 바와 같이 1973년 1차 석유위기가 시작되면서 ‘한 번의 결정’ 종목들은 추풍낙엽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예를 들어 1972년 디즈니의 주가수익배율(PER)은 76배에 달했지만 1980년에는 11배까지 떨어졌고, 맥도널드의 PER는 같은 기간 83배에서 9배로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삼성전자가 1973년 당시의 미국 우량주처럼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식시장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시계를 잠깐 10년 전으로 돌려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의 리스트를 확인하면 더욱 명확하다. 2020년까지 최상위권의 순위를 유지하는 기업은 단 3종목(삼성전자,현대차, LG화학)뿐이다.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제일 먼저 ‘니프티50’ 장세 때처럼 각 종목의 주가가 너무 고평가되었을 수 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코닥이나 제록스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도태되는 기업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마지막 세 번째 가능성은 시장의 주도주가 바뀌는 경우다. 앞에서 거론했던 것처럼 2007년의 중공업주,그리고 2015년의 소비재 테마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토록 변화무쌍한 주식시장에서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투자의 세계에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양한 기업에 분산하는 것이 유력한 대안이라 생각된다. 특히 최근 인플레에 대한 기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간 부진했던 가치주에도 관심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