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6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대학로 학림의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르려던 참이었습니다. 좁다란 층계를 올려다보니 나이 지긋한 두 분이 한 분을 부축해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밟아내려 왔습니다. 새초롬해진 제 얼굴을 보며 백발의 깡마른 분이 "아가씨, 미안해요~"라고 정중한 한마디를 건네고 가셨습니다. 몸놀림이 고된 어르신의 의외의 한마디가 얼굴을 붉혔습니다. 아뿔싸! 백기완 선생이셨습니다. 어깨가 이미 스쳐 지나고야 기억난 것을. 되돌아가 꾸벅 인사라도 드릴 용기는 없없다고, 주저하던 것을 고백합니다.
15일 영면에 든 백기완 선생의 비보에 '부끄러움'을 회고합니다. 세파에 이미 무뎌진 나의 부끄러움을 고백합니다. 2008년, 2013년, 대학로를 어슬렁거리곤 광화문을 드나들던 한때의 이들에게도 그는 누가 말했건 '젊음의 한 조각'이었을 테지요. 춘몽에 아른해 뜨거운 가슴으로 그의 부르짖음에 애탔던 젊은 춤꾼이었노라고. 그러나 이미 세월이 훑어간 부끄러움에 대해, 성마른 짚불이었노라고 고백합니다.
나이 먹어 부끄러움을 모르는 부끄러움, 치기 어려 영글지 못한 부끄러움, 부끄러워야 할 때 부끄러워하지 못한 부끄러움…. 향년 89세의 일기까지 커다란 횃불처럼 활활 타오른 선생의 일생을 톺아봅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부끄러움을 아는 것으로부터 비롯한 것임을.
영면에 든 그대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으셨을 것입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셨을 것입니다. 남기신 마지막 글귀까지도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느라 일생을 바치셨습니다.
그는 시 '묏비나리'에서 '딱 한발 띠기에 인생을 걸어라'라고 청춘에게 고합니다. 되돌아갈 용기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