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에스컬레이터 앞에 발길이 멈췄다. 까마득한 계단을 오르지만 마음은 편안하다. 내일은 어제보다 안전한 출근길을 오를 수 있어서다. 이런 불편쯤이야 환영한다.
요새 공사 현장의 입간판 풍경도 달라졌다. 과거 공사장에선 ‘당초 예정된 6개월 앞당겨 국민의 불편함을 덜어드리겠습니다’와 같은 플래카드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빨리’ 하겠다는 표현보다 늦더라도 ‘확실하게’라는 메시지가 자리를 대신한다.
이런 문구는 ‘안정성’을 강조하는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리적인 공사현장도 그렇지만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 역시 동일하다. 초연결사회에선 작은 결함이 몰고 오는 후폭풍도 크다. 신속한 출시도 필요하지만 확실한 ‘조치’가 더 중요한 이유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인프라 정비에 여념이 없다. 지난해 옵티머스 사태로 홍역을 앓으면서다. 사모펀드 투명성 제고를 위한 ‘펀드넷’에서부터 모험투자지원 플랫폼 ‘벤처넷’ 등 서비스가 올해 공개를 앞뒀다.
예탁원도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건 ‘언제’가 아닌 ‘확실히’라는 촘촘한 설계라는 것.
이명호 사장도 8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신속성과 경제성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인 플랫폼 기업으로서 안정성을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장과 약속했던 부분은 차질없이 추진하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예탁원이 약속한 건 ‘일정’이 아니다. 투자자들과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금융 플랫폼 구축이다. 투자자 안전장치를 보완하는 움직임에 잠깐의 불편쯤이야 참을 수 있다. 국민의 재산을 보관하는 공공기관, 예탁원의 혁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