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코로나와 플랜D

입력 2021-02-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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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디지털미디어부장

비트코인 광풍이 일던 2017년 말,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던 한 가족이 있었다. 디디 타이후투라는 30대 후반 네덜란드인 남성과 그의 아내, 그리고 어린 세 딸이었다. 당시 타이후투는 비트코인에 투자하겠다며 전 재산을 팔고 노숙 생활을 시작, 광인(狂人) 취급을 받았다.

그로부터 4년. 비트코인이 4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수시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문득 타이후투 가족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지금쯤 억만장자가 돼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이런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의 소셜미디어를 찾아가 보니 그와 그의 가족은 여전히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비트코인으로 거부가 됐을 법한데도 타이후투의 가족은 왜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그동안 타이후투 가족은 전 세계 40개국을 여행했다고 한다.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비트코인으로만 생활하며, 그 경험담을 2만 명이 넘는 추종자들과 공유했다. 또 그는 비트코인으로 번 돈의 절반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집 한 칸 없이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도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타이후투 가족의 얼굴은 세상 밝아 보였다.

비트코인 값이 또 언제 곤두박질칠지 모르는 불확실 속에서도 그들의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타이후투가 공개한 ‘플랜D’에 답이 있어 보인다. 보통, 사람들이 목표를 세울 때는 불확실성을 감안해 플랜B도 만들어 둔다. 플랜B를 차선으로 놓고 목표에 매진하는 것이다.

타이후투는 달랐다. 플랜B와 플랜C를 건너뛰고 플랜D를 내놨다는 건 그만큼 삶의 진로 변경을 탄력적으로 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플랜B와 C의 행방은 차치하고, 그의 플랜D에 따르면 ①집을 포함해 모든 사치품을 판다. ②비트코인에 올 인 한다. ③저렴한 열대 섬에 살면서 월 생활비를 최소화한다. ④오르기를 기다리며 지낸다. ⑤고점에서 비트코인을 스테이블 코인으로 바꾼다. ⑥바닥에서 비트코인을 더 산다. ⑦은 ④번부터 되풀이.

사실, ①~③번은 본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④번부터는 그렇지 않다. 운명에 맡겨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타이후투는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1년여 사이, 세상을 온통 불안과 공포에 몰아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전염병의 출현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코로나19 발발 전, 우리 모두는 계획을 세우고 무언가 이루리라는 꿈을 꿨다. 누군가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며 큰돈을 벌고자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해외 유학을 준비하며 더 나은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세계 여행을 꿈꾸고, 누군가는 새로운 가정을 꾸리려 했을 것이다.

코로나19만 발발하지 않았다면 이 모두가 가능한 것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전례 없는 전염병의 팬데믹에 모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이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누군가는 한 채에 10억 원을 호가하는 집을 살 엄두가 안 나 대신 수백만 원짜리 명품 백을 사고, 한 주(株)에 몇만 원에서 몇십만 원 하는 대기업 주식을 사 모은다. 불안한 미래와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작은 만족감으로 메우려는 것이다.

굳이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를 언급하자면, 문제는 그 이후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나름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어서 이런 분풀이는 금세 한계에 봉착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플랜D는 마음 챙김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거리두기 탓에 마음을 다독여줄 가족과의 거리도, 믿고 의지할 신과의 거리도 좁힐 수 없는 처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챙겨야 하는 것이다.

설과 함께 우리의 진짜 새해가 밝아오고 있다. 플랜B와 C가 모두 좌절됐어도 미래는 여전히 열려 있고, 그 물꼬는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모른다. sue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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