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2006년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할 것으로 밝히면서 한 말이다. 그의 이 한 마디는 재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일깨웠다. 버핏 회장은 재벌 사회 기부 문화에 새 지평을 열었다.
한국의 기부 문화는 단순한 사회공헌을 벗어나 변화 중이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8일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밝혀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김 의장의 총 재산은 1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만큼 기부가 실제로 이뤄지면 국내 재벌 총수 가운데 유일하게 5조 원 이상 기부자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한국은 재계 총수들을 중심으로 고액 기부가 이뤄졌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06년 숙명여대에 100억 원을, 2015년 청년희망펀드에 200억 원을 기부하는 등 고액 기부자로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2007~2013년 주식 8500억 원어치를 현대차 정몽구 재단에 출연했다. 2015년엔 청년희망펀드에 150억 원을 기부했다.
고 구본무 LG 회장은 2015년 청년희망펀드에 70억 원을 기부했다. 별세 후엔 구광모 LG 회장 등 유족이 구본무 회장의 사재 50억 원을 LG복지재단 등에 기부했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국제백신연구소에 10억 원을 기부했다. 2015년 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청년희망펀드 기부액은 20억 원에 달한다.
최태원 SK 회장도 사재를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했다. 2015년 그가 낸 기부액은 60억 원이다. 2018년 최종현 학술원에는 500억 원을 기부해 세간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의 창립 회원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은 27년간 132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허창수 GS 명예회장도 상당한 액수의 기부액을 자랑한다. 2006년 남촌재단에 500억 원 규모의 GS건설 주식을 증여했고, 2015년 청년희망펀드에 30억 원 사재 출연했다.
2015년 김승연 한화 회장은 청년희망펀드에 40억 원을,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은 16억 원을 기부했다.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회장은 200억 원을 한국타이어나눔재단, 함께 걷는 아이들 등에 출연했다.
그러나 한국의 기부문화는 경제 수준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지난해 5월 발표한 세계기부지수(World Giving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2009~2018년 누적 기준 한국의 기부지수 점수는 34%로, 126개국 중 38위다. 설문조사업체 갤럽이 조사 시점 기준으로 전월에 기부한 적이 있는지를 질문해 응답을 백분율로 환산한 결과다. 한국과 순위가 비슷한 국가로는 케냐(34위)와 슬로베니아(35위), 우즈베키스탄(36위) 등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에서는 20위였다. OECD 회원국 중 조사 결과가 없는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터키는 제외됐다.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미얀마는 기부지수 점수 81%로 1위에 올랐고, 71%를 받은 미국이 2위였다. 몰타, 태국, 네덜란드가 그 뒤를 이었다. 예멘과 조지아는 기부지수 점수 6%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의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범수 의장의 고액 기부는 사회적으로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상위 0.001% 차원의 기부인 만큼 부자들의 기부 문화 변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재벌들의 기부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방법으로 활용된 면이 있다"면서 "이번 (김 의장의) 기부가 새로운 모범 사례이자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